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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유 Sep 01. 2021

어쨌든 그 길은 당신이 정하는 것이라오.

The Road Not Taken, The Calf-Path



많은 것 보다 적은 것.

복잡한 것보다 보다 단순한 것.


수많은 전기들과 철학책 등에서 여러가지 모양일지언정 꽤 높은 확률로 단순함이 가진 힘에 대해 언급되는 것 같다.  


폴란드 출신 유명한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Simplicity is the final achievement. After one has played a vast quantity of notes and more notes, it is simplicity that emerges as the crowning reward of art.” (“단순함이야 말로 최종적인 성과이다. 방대한 양의 음표와 더 많은 음표를 연주한 후에는 예술의 최고의 보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단순함이다.”)이란 말을 했고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표적 인물을 넘어 인류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역시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단순함은 최고 수준의 정교함이다.") 라는 말을 남겼으니, 분야를 막론하고 단순함이 시사하는 의미는 분명해 보인다.


글은 어떨까.


소설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로 유명한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Easy reading is damn hard writing.” (읽기 쉬운 글이란 지독하게 어려운 글쓰기를 뜻한다)라고 했으니 독자에게는 휘리릭 넘기기 편하고 소화하기 쉬운 글이 작가에게는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은 고민과 고통끝에 나온 산물임을 안다.


문학의 여러 종류 가운데 유독 간결함과 단순함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르고 골라 의미가 상통하면서도 여러 느낌과 뜻이 농축되어 있는 단어를 적절한 자리에 배치해서 음악적인 요소까지 더해야 하니, 시를 읽으면서도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은 맞는지 괜시리 고심되고 부담되기까지 한다. 내 얄팍한 잔지식과 잔재주로 섵불리 해설을 쓰고 달고 싶지 않아 어느 시들은 일부러 애써 해석하려 들지 않고 그저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기도 한다.







당신이 머무는 그 도시의 시작은 작은 송아지였다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해도 산 뒤로 저무는 시간, 일부러 시를 읽어보자는 생각에 집어든 시집을 거칠게 핀 곳에서 샘 포스(Sam Walter Foss) The Calf-Path라는 시가 나왔다. 19세기 말에 쓰여진 무려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제법 길이가 있는 시. 특정 장면을 사진을 찍듯이 묘사하는 종류가 아닌,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담아낸 종류의 시였다.


이 시의 시작은 송아지(Calf)로 시작한다. 오랜 시간 전,  3세기 이전 어느 시간에 이름없는 한 송아지가 들풀이 우거진 원시 산림을 지나 집으로 향한다. 별 의미 없는 걸음. 그리고 그 걸음으로 만들어진 발자국.


그 송아지는 시간이 지나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발자국은 땅에 새겨져 있다. 그 발자국을 따라 개와 양떼들이 지나고, 그 뒤에는 사람들도 따른다. 송아지의 작은 발자국 위를 지나는 이들이 점점 더해지고 결국 그곳은 제대로 된 도로가 깔리고 마을이 되고 도시로 변모한다.


이 시의 재미있는 사실은 마지막장에 작가가 직접적으로 이 이야기의 교훈을 일러준다는 것이다.


For men are prone to go it blind
Along the calf-paths of the mind,


And work away from sun to sun,
To do what other men have done.


사람들은 오래전 어느 송아지가 의미 없이 새겨놓은 발자국을 따라 똑같이 생각없이 걸으며 하루 그리고 또 다른 하루를 다른 이들을 따라가는데 바쁘게 쓴다. 그 길이 구부러지고 좋지 않은 길이더라도 누군가가 밟아놓은 그 길을 지켜야 한다는 이상한 연유로, 그 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고 쓴다는 것.


송아지가 걸은 것 뿐인데 그 길만이 정답이라고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전하는 직접적이고 제법 엄중한 메시지.


어렸을 적 배운 시가 떠올랐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답설야중거 불수 호난행 금일아행 적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마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조선후기의 문신 이양연이 지은(서산대사의 시라는 설도 있다) 한시라고 했다. 천둥번개치면서 눈이 그야말로 쏟아지고 퍼부어지는 이 곳 캐나다의 겨울을 보내면 이 시의 내용이 그렇게 실감이 날 수가 없다. 폭설이 지나간 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디딛을 땐 온다리에 힘이 딴딴히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내 뒤의 누군가들을 위해 최선은 모를지더라도 괜찮은 발자국은 찍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는 이유다. 비틀거리더라도 넘어지거나 다치는 것은 싫은 욕심을 담아 꾹꾹 내딛는 발자국이 더해지면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건 금방이다.






당신이 가는 그 길,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길'은 우리의 인생과 닮은 구석이 많아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의 흔한 주제가 된다. 우거진 수풀을 토독 토독 걸었을 송아지를 상상하니 또 하나의 시가 떠올랐다. 너무나도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중학교 졸업 즈음에 읽은 이 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명시'라는 거창한 타이틀과 함께였다. 시도 쉽지 않은데 영어라니, 자연스럽게 곧바로 해설에 눈이 갔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데에서 찾아오는 기쁨과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시라는 설명. 변화, 개혁, 혁신, 그리고 도전. 시보다 긴 해설이 꽤나 굵직한 그림자로 달려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시를 읽은 후여서 마음이 조금 느려져서였을까. 영어로 어떤 글을 읽는 것이 그때만큼 불편하지 않아서 인 것도 분명 있겠지. 어쨌든 다시 찾아서 읽어본 이 유명한 영시 '가지 않은 길'에서 나는 꽤나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내가 분명 같은 시를 읽었던가, 싶도록 새로운 부분들이 쑤욱 내게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시의 2연에서 화자는 간결하지만 제법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길,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길, 두 길 다 똑같이 아름다웠다고. 이어 2연의 끝부분, 그리고 이어지는 3연에서 화자는 이 두 길의 모습 또한 매우 비슷하다고 표현하며 다시 한 번 확인 도장을 찍는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아침, 그 두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아직 채 닿기 전이라 새로운 낙엽에 덮혀 있어서 정말로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다고 말이다.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재미있는 사실은 2연과 3연에서 분명히 두 갈래의 길은 매우 비슷했다고 얘기했음에도 4연에서는 화자가 '나는 사람들이 비교적 덜 선택한 길을 걸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태세변화에 머리가 긁적여졌다. 둘 다 동일하게 아름답게 보였다고 ('just as fair') 했는데 어떻게 어느 길이 사람들이 더 걷고 덜 걸은 것을 알 수 있었냐는 말이다.


4연을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니 '한숨'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화자는 한숨과 함께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먼 시간이 흘러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두 길 모두 걸어보고 싶었더래도 결국 나는 한 길만을 선택해야 했다고.

그래서 난 첫번째가 아닌 두번째 길을 선택했다고.

내가 가보지 못한 그 길이 나는 어땠는지 알 수는 없다고.

하지만 내 선택으로 인해 모든 것은 달라졌음은 확실하다고.


이 모든 것들에서 몰려오는 여러가지 감정들과 생각들을 그저 한숨 하나로 내비칠 뿐이라고.


내가 선택한 길이 남들이 덜 선택한 길이라는 것은 어쩌면 화자의 추측 혹은 바람일 지도 모르겠다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 그는 선택한 길 위에서 제법 거칠고 힘겨운 곳을 많이 만나왔던 것일까. 이렇게 길이 험하니 분명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은 것이었더라고,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넌지시 드리우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선택한 길과 그 선택에서 비롯한 결과는 내 인생에 되돌릴 수 없는 색채를 입힌다.

이는 앞으로만 전진밖에 가능하지 못한 삶의 여행자 모두에게 운명처럼 해당되는 것.

되돌릴 수도, 사실 알아봤자 이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반대편 길이 궁금해지는 마음은 꼭 있다. 그래서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 시의 제목을 끝끝내 내 호기심이 닿는 '가지 않은 길'이라고 달아놓은 것은 아닐런지.




어느 산을 오르고 싶습니까



포스는 The Calf-Path를 통해 누군가를 걸어간 길만이 오직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통해 내가 선택한 길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꾼다고 이야기한다. 두 시인이 전하는 메시지를 합해보자면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반드시 최선의 길은 아닐 수 있으며 어쨌든 내가 내린 내 선택은 나의 인생을 인도한다는 것. 그 선택에 있어 도돌임표는 없으므로 인생의 끝날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쁨이던 슬픔이던 내쉬는 긴 한숨뿐일거라고.


인생은 누구에게나 미스터리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 내는 것이 우리네 삶인데 그렇다고 그 삶을 우리가 속속들이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으니 아무리 역사가 많이 흘렀을 지언정 산다는 것은 완전히 뜰래야 뜰 수 없는 눈을 갖고 걷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인생의 마지막 계절, 겨울날에 내가 내쉴 수 있는 것이 어쨌거나 한 자락의 한숨뿐이라면 내가 걷는 길을 제대로 정해야겠다는 마음. 그리고 다짐.


누군가 조언을 해 줄수는 있을 지언정, 그것이 꼭 도움을 준다는 보장도 없고 내 인생의 선택의 결과는 오롯히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니, 나는 무슨 산을 오르고 싶은지 치열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산을 오르다보면 넘어지고 손과 무릎이 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불평해봤자 어리석다는 소리 밖에 더 들을까. 한숨을 쉴 수 밖에 없더라도 내가 오르고 싶은 산에 올라서 쉬면 조금은 더, 아니 말할 수 없이 상쾌할 것 같다라는 기대도 있다.


쇼팽과 다빈치의 말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음악과 미술과 같은 예술 작품의 최고수준이 단순함이라면 내 인생을 썩 괜찮은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역시 단순함이라는 재료가 필수적이라 추측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해야만 하는 것, 나만 할 수 있는 것. 이 세 동그라미의 교집합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 오늘도 계속 '단순하게' 문을 두드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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