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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귀 Aug 02. 2023

25kg 이민가방을 들고 일본으로 떠난 날

일본 워킹 홀리데이 첫날의 기록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무슨 정신으로 일본에 간 건 지 기억이 안 난다. 

시간이 흐른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이 당시 나는 조금 멍하고 있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타국에 살러 가기에는 29살이 너무 늦은 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본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해서 기어코 일본행 편도 비행기표를 끊었다. 


나는 특별한 신념이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를 위해 걱정해 주는 말들을 미안하게도 모두 흘러버렸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나를 걱정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은 선명하지가 않고 머릿속에 뿌옇게 남아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나를 걱정해 주는 수많은 그 입모양들만 어렴풋이 맴돈다. 






6월. 일본으로 떠나는 날, 미안한 마음에 괜찮다고 해봐도 엄마 아빠는 차에 내 짐을 싣고 함께 공항에 가 주었다. 집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엄마 아빠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떠나는 게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산 3단으로 늘어나는 이민 가방에 이것저것 짐을 실으니 그 무게가 25kg이었다. 옷가지랑 일기장이랑 책 몇 권... 그래봤자 별 거 챙긴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혼자 끌고 가기에는 무거운 짐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면서 이민 가방을 접수해 놓고 무게 추가에 대한 요금을 지불했다. 인터넷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미리 택배를 보내 놓거나 한다던데, 나는 들고 가는 이민 가방 외에 추가로 짐을 일본으로 부치지는 않았다. 조금 고생해도 직접 들고 가는 편이 더 저렴하다는 얄팍한 계산이었다. 

 

엄마 아빠와 안녕을 인사하고 혼자 비행기를 타러 들어갔다. 대만, 홍콩 그리고 프랑스... 이전에도 혼자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있었기에 혼자 공항에 있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일본 중에서도 한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인 후쿠오카. 비행시간이 1시간 남짓, 언제라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기간이 1년으로 정해져 있었기에 그 당시에는 남은 평생을 일본에서 살 거라는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 나를 배웅하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도 슬픈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작에 대해 떨리거나 설레지도 않았으니 아마 뭐가 뭔지 구분을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혼자 25kg짜리 짐을 들고 낑낑 거리며 하카타행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20대의 마지막이었던 나는 참으로 무모했다.


고작 키 155cm인 여자가 자기 몸만 한 크기의 가방을 들고 아무리 이리저리 애를 써도 잘 움직이지 않자 주변에 있던 일본인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렇게 도움을 받으며 하카타역에 위치한 부동산에 먼저 들렀는데 짐 가방을 보고 그걸 한국에서 가져왔냐고 다들 놀랄 정도였다. 심지어 키를 받고 부동산에서 집까지 도보 3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그 짐을 들고 걸어갔다. 


택시를 타거나 하다 못해 버스라도 탈 순 없었던 거니 나 자신아

그때의 나는 참 용감했다...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쯤이었는데 어찌어찌 집을 찾아 들어가니 방이 암흑처럼 깜깜했다. 온라인에서 방을 보고 사진으로만 방을 보고 월세와 위치로 결정한 곳이라 실물은 보지 못한 채로 계약한 방이었다. 


급하게 부동산에 문의를 하자 원래 일본은 전등이 없는 게 기본이라는 대답을 받았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덩그러니 누웠다. 25kg 이민가방을 들고 오느라 힘을 다 써버려서 저녁에 전구를 사러 가거나 뭔가를 먹으러 어딘가에 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베란다 창문 앞에 누우니 달빛을 비쳤다. 그렇게 누워 있으면서 한국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생각하니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홀로 일본에 온 게 실감이 났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일본에서 살아간다니. 그때까지 일본에 가는 날을 잡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멍하기만 했던 내 영혼이 비로소 정신을 차린 기분이다. 


어두운 방에 혼자 남아서였을까. 설레고 기쁜 것보다 혼자라는 외로움, 아무것도 모르는 막막한 생활에 대한 걱정 같은 수많은 감정들이 몰려왔고 강아지 사진을 보면서 엉엉 소리를 내며 울다가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내가 일본에 온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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