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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 Feb 27. 2019

단상: 졸업하는 마음

대학교를 6년이나 다닐 줄은 몰랐지

졸업식을 갈지 말지 꽤나 고민했다. 학과 우수생도 아니고, 퇴사한 취업준비생. 

열심히 지원해주신 부모님께 아직은 경제적으로 떳떳할 수가 없어서 슬프기도 했다.

졸업식에 가서 기분 좋게 웃으며 나의 졸업을 스스로 축하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졸업할 준비가 된걸까?


돌아보면 6년 동안 다양한 (자소서에는 절 대 쓰지 말라는 그 다 양 한 경험)을 했다.

심상치않은 언어 전공생으로 남미 대륙에서 유학을 하고, 덕분에 남들보다 작은 결심으로 남미여행을 했다. 

누구보다 철저한 현지 적응으로 진짜 재밌게 여행한 기억만 남았다.



이렇게 고생도 사서 하고

우루과이-브라질 국경에서 브라질행 밤버스 놓치기 (남미 겨울의 매운맛을 봤다,,)

우연히 브라질 Paraty 재즈페스티벌 기간에 가서 매일 숙소구하느라 고생하기

어이없게 문턱에 걸려 넘어져서 발목에 금가 파타고니아 못가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직행하기

고산병 걸려서 크리스마스에 하루종일 누워있기


고생만 있느냐, 고생에서 탄생한 기분좋은 우연도 많았다

버스 놓치고, 환전한 우루과이 페소도 바닥나고, 카드도 먹통인 상황. 자그마한 여관에 들어가 카운터 앞 간이의자에 앉아서 해뜨는 것만 기다려도 되냐고 부탁했더니, 불쌍했는지 남는 방을 내주셨고

Paraty 재즈페스티벌에서 숙소찾느라 고생했지만, 자연과 음악이 만나는 내 인생 최고의 페스티벌로 남아 심지어 2년 후 다시 갔고

그렇게 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살녹는 소고기와 와인을 원없이 맛보고

아픈 동기 챙겨주는 나연이 덕에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흠. 이렇게 쓰고나니 남미 여행 특집으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졸업식 소감쓰다가 갑분남미여행.



대학생활에 여행이 다는 아니지만, 걱정없이 즐겼던 그래서 행복했던 순간들이라 자연스레 여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는 역시나 학교 안팎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를 알아간게 최대 이익이었다. 세상에 한 길만 있는 건 아니구나. 나도 그렇게 살 수 있겠구나 라는 용기를 얻은 것.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이 있는 신분 속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직접 해보면서 나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알게 되어서 무척이나 감사하다. 사회는 무자비한 곳이니 다들 학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닐까,,하하


이렇게 자연스럽게 졸업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나보다.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사람이 한 순간에 성숙해지진 않지만 최소한 사회인으로서 책임감은 자연스럽게 생겼다. 


이런 나에게 졸업은 책임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정말 빼박 성인이잖아 라는 팩트를 몸소 느끼는 시간. 
그래서 도망치지 않으려 졸업식에 갔다. 


슬프거나 아쉽거나 그런게 아니라 6년 이란 시간을 한 대학교의 학생으로 잘 보냈다는 사실을 스스로 축하하고 싶은 시간. 그래서 졸업식에 기꺼이 기쁜마음으로 가 누구보다 발랄하게 스스로를 축하했다. 가족, 친구들이 선물한 가장 좋아하는 색의 꽃다발을 들고,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학사모는 인간적으로 너무 안어울렸다)


조금 돌아온 길이지만, 돌아오며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단편적인 취업시장에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지만, 또 금방 기운 차린다 :) 

도망칠 수 없으니. 기왕 하는거 잘 해버리면 되니까.


그러다 안되면? 뭐 다른 길이 있을테니까!


P.S. 각자의 인생을 써내려온 졸업하는 모두들, 수고했어요 -!

동고동락한 우리 동기들. 우리가 문 닫았다! 예예!!
취향저격 노랑노랑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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