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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코니 Mar 19. 2022

잠들기 전에 읽는 백일야화(百日夜話)

여덟 번째 밤 - 강의 여신(3)




강가에는 얼기설기 지은 오두막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강둑을 따라 한 사람, 혹은 간신히 두 사람 정도 들어가 누우면 꽉 찰 집이었다. 생김새도 제 각각이어서 나무판자로 지은 것도 있고 돌을 쌓아 항아리 모양으로 둥글게 쌓은 후 갈대 지붕을 덮은 것도 있었다. 싸릿대로 벽을 둘러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오두막은 사람을 위한 쉼터라기보다는 염소나 오리를 위한 우리처럼 보였다. 꽤 엉성해 보이는 모양새였으나 아쉬운 대로  밤이슬을 피하고 새벽 추위를 견딜만해 보였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그 앞을 지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 저런 오두막들이 있었었나?”


강의 여신을 부르기 위해 밤낮없이 기도하던 때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오로지 강물만 뚫어져라 쳐다보느라 강둑에 늘어 선 오두막들이 거기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금 강가에 홀로 남겨지자 비로소 눈에 강둑의 오두막이 들어온 것이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심드렁한 눈길로 오두막을 훑어보고는 이내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금빛 고운 모래는 하루 종일 햇살을 쬔 덕분에 따끈하게 데워져 있었다. 

슬픔에 시달린 끝에 고통을 없애겠다고 동분서주하느라 지친 사람이 모래사장 위에 앉았다.  엉덩이 아래로 따뜻하고 보드라운 기운이 올라왔다. 강변에 앉은 사람은 마음을 내려놓고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여느 때처럼 소리 없이 유유히 흘렀다. 시간도 흐르는 강물처럼 무심하게 흘렀다. 

 

가끔 먼 데서 하늘을 나는 새의 짧은 울음소리가 들려 올뿐 슬픔의 강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강의 여신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강가에 앉은 이에게 강 자체가 여신처럼 느껴졌다.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온 세상이 강물 안에 담겨 있는 듯했다. 여신을 만나려 기도에 매진할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과 바람과 소리가 강가에 앉은 사람을 휘감았다. 


기도를 바치던 이는 하염없이 강물만 쳐다보았다. 잔잔한 강물을 바라보니 여신을 불러내는 일에도 흥미가 줄었다. 그저 노을빛에 붉게 반짝이는 강물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지 모를 만족감이 차올랐다.

해가 기울고 밤이 되었다. 강 위로 펼쳐진 너른 하늘에 은하수가 흘렀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검은 하늘에 가득 찬 별을 실컷 구경했다.  강물은 둥실 떠오른 달빛에 비추어 하얀 비단천을 풀어놓은 듯 출렁였다.

     

“으, 춥다.”     


밤바람이 불자 슬픔에 빠진 사람이 어깨를 떨었다. 여신을 불러내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때는 발목이 강물에 잠기는 줄도 모르고 밤새 서 있었다. 

     

“그때는 기도에 집중하느라 추운 줄도 몰랐지.”     


여신을 만나리라는 염원에 온몸이 달았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여신은 분명 강가에 앉아 있으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슬픔을 없앨 방법이 겨우 모래 위에 넋 놓고 앉아 있는 일이라는 말에 김이 빠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일까? 풀어놓은 마음 사이로 강바람의 찬 공기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어이, 추워! 어디 바람을 피할 데가 없을까?”     


슬픔에 빠진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강둑에 늘어선 오두막을 보았다.      


“아! 저기라면!”     


슬픔에 빠진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종종걸음으로 가장 가까운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집이라고는 처음 지어 본 사람이 만든 것 같구먼.”


오두막은 엉성하게 생겼지만 추위를 피하기에는 넉넉했다. 이렇게 해서 슬픔에 빠진 사람은 날이 밝으면 모래사장 위에 앉았다가 밤이 되면 오두막으로 와 잠을 청했다.

 

시간은 강물처럼 천천히 흘렀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언제 이리로 왔는지, 언제부터 모래사장에 앉아 강물을 쳐다보게 되었는지 흐릿해졌다. 몇 달이 되었는지 몇 년이 흘렀는지 가물가물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날짜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슬픔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않았다. 억지로 버둥거리지 않아도 슬픔은 옅어질 대로 옅어져 어느새 작은 기억으로 오그라들었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이었다. 

슬픔에 빠진, 아니 한때 슬픔에 시달렸던 사람이 먹을 물을 뜨러 강가로 나왔다. 그는 그동안 작은 오두막에서 먹고 자며 강물을 바라보는 시간을 보냈다. 손수 만든 작은 양동이에 물을 담던 사람의 손길이 멈칫했다. 종아리까지 강물에 담그고 허리를 굽힌 그 앞에 물 그림자 하나가 일렁였다.      


“아! 여신님!”     


강의 여신은 달빛처럼 새하얀 미소를 짓고 강가의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오래간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슬픔은 어찌 되었느냐? 아직도 네 마음속에 가득 차 너를 짓누르고 있느냐.”     


그는 허리를 펴고 서서 가만히 고민에 빠졌다. 잠시 후, 슬픔에 빠졌던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슬픔은 모두 잊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제 생각에는 여신님이 사시는 강물을 마셔서 슬픔을 씻어낸 게 아닐까 합니다.”     


여신이 빙그레 웃었다.     


“내가 사는 강은 시간의 강이지, 망각의 강은 아닌데.”     


그 말에 슬픔에 빠졌던 사람이 배시시 웃었다.      


“다들 여기를 슬픔의 강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래서 저도 슬픔을 떠내려 보내는 힘을 가진 강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신이 손에 든 등불을 사람의 가슴께로 가져다 댔다. 가슴에서 솟아 나온 빛무리 가운데 보이는 그림이라고는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뿐이었다. 슬픔에 빠졌던 사람이 빛그림을 가리켰다.     


“보세요. 제 마음에는 슬픔 대신 아름다운 강의 풍경과 강물만 가득 차 있답니다. 이게 모두 제가 매일매일 강물을 마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여신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은 강물이 아니라 네가 보낸 시간이다.”     


그 말에 슬픔에 빠졌던 사람이 멍하니 여신을 바라봤다.  여신이 설명했다.    


“슬픔을 씻어내기에 가장 좋은 해결책이 바로 세월이니까. 슬픔은 스스로 마음에서 떠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만사 억지로 되는 건 없지. 사람은 누구나 한시라도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만 슬픔은 다그치고 조바심 낸다고 도망가지 않는다. 오히려 몸집을 더 크게 불려 사람을 괴롭힐 뿐이지.” 

    

슬픔에 빠졌던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이 선언하듯 말했다.     


“슬픔에 빠졌던 이여, 나는 그동안 당신의 마음에서 슬픔이 씻겨나가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지켜봐 왔다. 오늘 내가 너에게 모습을 보인 이유는 이제 네가 이 강을 떠나 네 삶으로 되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다.”     


다음 날 아침, 슬픔에 빠졌던 사람은 작은 오두막을 새로 짓기 시작했다. 슬픔을 씻어내기 위해 이 강을 찾아올 사람을 위해서였다. 강가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가 묵어갈 쉼터를 지어놓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앞서 왔던 사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여신은 오두막을 지어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강의 여신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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