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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생각남 Aug 07. 2022

아빠, 설마가 사람 잡아요

초3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시작하면서 한자검정시험을 접수했습니다. 여름방학 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들은 8급, 저는 4급.


아이들과 한자검정시험을 함께 보는 것은 제 로망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말에서 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자 공부는 쉽게 말해 우리말 공부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한자를 좋아했던 저는 결혼해서 아이를 갖게 되면 함께 한자검정시험을 보며 시험 급수를 한 단계씩 높여 보고 싶었습니다. 마치 한자 도장 깨기 같은 느낌으로.


아이들 초3 여름 방학을 맞아 한자 도장깨기 프로젝트의 대장정을 시작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으려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최근에 회사가 너무 바빠 한자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남은 시간은 3주 정도. 외워야 하는 한자는 수백 자인데 남은 3주도 바쁜 상이 바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한자 공부를 안 하는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에 학교에서 8급 한자 시험을 본 적이 있다며 아이들은 무사태평이었습니다.


아이글과 첫 도전인데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과 응시료 6만 원(개인당 2만 원)이 아까운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조심히 말했습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아빠는 회사가 바빠서 준비를 거의 못했어. 아빠는 이번에 시험 안 보고 다음에 다시 접수할까 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야?"


둥이 2호 입에서 생각도 못한 말이 튀어나옵니다.


아빠,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거잖아요.


"시험을 보는 것도 경험이에요. 시험보다 보면 나중에 합격하겠죠. 이번에 그냥 시험 보는 건 어때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누가 아빠고 누가 아들인지.


경험은 실패 경험도 있고 성공 경험도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성공하는 경험만 보여주고 경험시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아이들과 한자검정시험장에 가서 같은 시간 속에서 함께 끙끙거리며 시험지를 푸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추억인데 말입니다.


둥이 2호의 말에 실패 경험을 대하는 아빠의 태도도 아이들에겐 중요한 본보기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도전해보는 거야' 하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둥이 1호가 쐐기를 박는 말을 합니다.


"아빠, 시험 같이 봐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


' ..그래, 설마가 시험 잡을 수도 있겠네. 근데 요즘 너희들 무슨 속담 학원 다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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