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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수플레 Jul 01. 2024

글약 vol.4. 봄밤

고등학교 2학년까지 우리 가족은 단칸방에 살았습니다.

내 방이 딱히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 작은 방에서 엄마의 한숨, 아빠의 불안함과 함께 자랐습니다.

동생은 어렸을때 머리를 다쳐 심한장애가 있었습니다.

내 교과서를 찢어버리는 날도 있었고, 과학상자에 들어 있던 유리를 맨 입으로 씹어 먹은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가장 슬펐던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놀고 싶었던 어린아이는

매번 동생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지만 동생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기엔 어느 하나 슬프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유년을 보내고 사춘기가 올 무렵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전주 천변 근처 아파트가 나의 꿈이 되었습니다.

아파트 거실 불빛 너머 오손도손 앉아 있는 가족을 상상했습니다.

그런 가족은 힘들고 슬플날이 별로 없을 것만 같았을까요?


하지만 정작 눈을 감으면 지금은 한옥마을이 생겨버린 우리집.

단칸방이 떠오릅니다.

엄마는 일을 하고 새참으로 받은 빵과 우유를 우리에게 나눠주곤

좁은 부엌에 쭈구려 앉아 작업복을 빨고 흙이 잔뜩 묻은 운동화를 솔로 문질렀습니다.


중학교 보충수업이 끝나 천을 따라 남부시장을 걸어 여름 볕에 한참 땀을 흘려 집에 도착하면

아빠는 바가지에 얼음을 띄운 보리차와 수박을 내어주었습니다.

찬이라고 해봐야 청국장하고 김치가 전부였지만 앉은뱅이 책상에 차려놓은 밥상에

파리라도 앉을까 면보를 덮어 놓고 기다리던 우리 아빠.


언제라도 나는 그 집을 상상하며 그집으로 가는 꿈을 꿉니다.

그렇게 내 마음속엔 항상 그 집이 있습니다.

그리운 것은 천변에 세워진 말끔한 집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있는 허름한 단칸방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지겹고 도망치고 싶었던 우울했던 유년은

사실 무척이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던 기억이었습니다.

그럴수 있었기에 나는 사랑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들리던 매미소리, 천변의 물향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의 가장 좋았던 기억 속에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으로

당신과 손을 잡으면 나는 그곳에 와 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

포근하게 잠들고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집에.

당신의 무릎에 누워 아이가 되고 싶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등을 토닥여주는 당신이 참 좋다.

왜 몰랐을까?

사람이 집이라는 것을.


당신에게 집이 되어줄 그런 사람이 옆에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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