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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아래접시 Nov 16. 2023

우리 집 밑엔 마귀할멈이 산다 2

층간소음이야기 2

주말이라 느지막이 일어나 티브이를 보고 뒹굴거리다 가까운 경주나 가볼까 하고 일어나던 참이었다.

"호출이 왔습니다. 호출이 왔습니다."

인터폰 화면에는 아랫집 동호수가 찍혀 있었다. 받을까 말까 잠시 머뭇거리는 틈에 인터폰 호출이 멈췄다. 마침 안방 화장실을 쓰던 남편이 인터폰 호출을 받은 것이다. 익숙한 남편의 음성이 중얼중얼 들리더니 곧이어 언성이 높아지고 정적이 흘렀다. 한참이 지나 씻고 나온 남편이 말을 이었다. 아랫집에서 또 시끄럽다고 하길래. 이제 나가려고 일어났다고 양해를 구한다고 했는데도 이 아줌마 말이 안 통하네. 소리 지르길래 나도 질렀어. 주말 오전인데 이 시간에 층간소음으로 인터폰 호출은 너무 하지 않나?

시계를 보니 이제 막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일요일 오전 11시.


이후 한동안 인터폰이 잠잠했다. 손님이 오기 전에 아랫집 현관문에 미리 붙여놓던 포스트 잇도 이후로는 한 번도 붙이지 않았다. 신기하게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만나던 아랫집 아주머니도 잘 만나지지 않았다. 어쩌다 만나서 가벼운 목례라도 하면 쌩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저녁을 먹다 말을 이었다.

"오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랫집 아저씨가 강아지를 안고 타고 있길래 우리 집 층을 못 누르고 제일 꼭대기 층을 눌러서 계단으로 내려왔어."

어른들의 기싸움이라 생각했는데 애들도 이미 눈치껏 행동하고 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눅이 들어서 있을 아이의 모습이 상상됐다. 그럴 땐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타면 돼. 우리 집 층수 누르고 자연스럽게 하면 돼.라고 했지만 찝찝한 마음은 여전했다.


어릴 적부터 줄 곧 주택에 살던 나도 윗 집 소음을 듣고 살았다. 방음이 잘 되지 않던 낡은 주택이었지만 그때는 그냥 윗집에 사람이 있네. 윗집 아저씨가 화장실을 쓰네. 그러고 살았다. 식구들끼리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누워있다가도 윗집 아저씨 이제 들어왔네. 아직 저 집은 안자네. 그러고 말뿐 층간소음으로 이렇게 아랫집 윗집 으르렁 거리고 살진 않았다. 신혼집으로 있던 아파트에서도 이렇게 강력한 항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 아랫집 부부가 맞벌이기도 했고 성향이 순한 사람들이어서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시끄럽지 않냐고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면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는 듯 별로 시끄럽지 않다고 짧게 이야기하고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때 더 층간소음이 심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집이 조용할 리는 없다. 그들의 에너지는 항상 충전되어 있어 언제라도 내지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바닥에 스프링이 달렸는지 밖에서 그렇게 뛰고 들어와도 발걸음이 퐁퐁 날아다녔다. 나도 아이들 성향을 알고 있어 늘 주의를 주고 예쁘게 걸어달라고 주문을 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흘려들을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엔 호통을 치고 아이들 눈에서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내고 협박하는 수준까지 가야 끝이 났다.

"망태할아버지가 올 거야. 너희들 집게로 이렇게 다 집어서 망태에 담아 갈 거야."

나는 몸을 한 껏 부풀어 손으로 집게 모양을 만들면서 아이들 뒷덜미를 집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이 움찔움찔했다.

"밑에 집에 마귀할멈 올라온다!!"

"너희들 마귀할멈 집에 보내줄까."

아직 어린아이들은 정말 엄마가 마귀할멈한테 보내버릴까 멈칫했다. 양 쪽 팔아래 두 아들을 끼고 잠자리에 들 때면 걱정 많은 둘째가 묻곤 했다.

"엄마, 형아 진짜 마귀할멈 집에 보낼 거야?"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둘째의 물음에 속으로 웃음이 나고 귀엽기도 했다.

-응. 형아 말을 안 들어서 마귀할멈 집에 보내야겠어.

"형아 보내지 마. 마귀할멈 집에 보내지 마."

눈물을 그렁그렁 보이며 사정을 하는 아이를 보며 둘의 우애를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 구석이 아리기도 했다.


이제는 애들이 제법 커서 첫째는 사춘기가 오고 두 녀석들 모두 집보다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긴 요즘 아랫집의 호출은 많이 줄었지만(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호출이 온다. 전과 달라진 것은 경비실을 통해 호출이 온다는 것. 직접 호출이 오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언짢은 마음은 여전하다. 뭐 자기네들은 우리한테 피해준거 없는가. 아랫집 사람들의 외출이 늦어지어둠이 무서운 강아지들 짖는 소리가 늦게까지 들릴 때도 있고, 안방 욕실을 통해 강아지 전용 샴푸 냄새(나는 모르지만 반려견은 키웠던 남편의 말로는)가 올라오기도 한다.

오늘처럼 다들 누워있었는데 시끄럽다고 층간소음 민원으로 인터폰 호출을 받는 날은 억울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기분이 다운된다. 늦은 밤 친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하소연을 하는데 친구의 말이 이어진다.

"올 겨울에 엄청난 한파가 와서 아랫집 사람들이, 아 그래도 우리가 윗집 덕에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었네. 윗집이 비어도 여전히 아파트는 시끄럽네. 이런 얘기를 자기네들끼리 할 수도 있어."


이삿날이 보름 정도 남은 밤이었다.

이사를 앞두고 미리 싸둔 짐들-서랍장을 버리게 돼서 김장봉투에 옷을 싸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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