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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Jul 22. 2024

17. 10년만 (1)

늦었다? 아니다?


혼자여행의 또 다른 문제는 내 사진이 안 남는다는 것이다. 

여행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우연히 잘 찍히면 그림엽서일 뿐, 나의 여행을 담고 있지 못한 거다. 

꼭 남기고 싶은 배경이 있을 때 팔을 있는 대로 뻗어서 셀카를 시도해 보지만

‘그래봤자’ 다. 

사진이 어떻게 나왔나 확인하기가 무섭게 삭제를 눌러버려야 한다.

누가 볼세라 재빨리.     

둘러보면 공식 셀카 각도로 팔을 뻗어 웃는 얼굴을 찍고, 

찍은 사진을 보며 더 환하게 웃는 젊은 여행자들이 주변에 깔렸다. 

어떻게 찍어도 예쁘게, 어떻게 찍어도 맘에 들게 나오는 거다.

 반면 나는 어떻게 찍어도 보관불가의 불쌍한 모습이다.   

   

이런 걸 먹으며 셀카를 찍었어야 한다. 프라하 스트라호바 수도원 내 맛집


왜 좀 더 일찍 이런 여행을 나오지 않았을까? 

아무렇게나 주워입고 다녀도 나름 멋있고, 사진을 찍으면 예쁠 필요도 없이 생기발랄하던 그 시절에 이런 여행을 했어야 한다.

그렇다. 아직 무릎을 붙들고 ‘아이고고’ 할 정도가 아닌 건 다행인데, 이름이 안 외워져서 아주 죽을 지경인 건 분명 나이 탓이다.     

잘 외워두자. 어느 정거장에서 갈아탄다고? Ha...뭐였는데? 맞나? 여기?

그런데 어느 방향으로 가는 전철이었지? M....? 어? 이쪽은 N...인데?

뭐지? 아, N이잖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전철이 오네? 맞나 이거? 

다시 한번 확인.....   


이미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젊을 때가 아니더라도, 10년만 더 일찍 나왔더라면... 

10년 전이면....

아이는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7시에 집에서 나가 보통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혼자 살고 계셨는데, 병원 가야 하는 날을 자꾸 나한테 숨겼다. 

오빠는, 가끔 전화가 걸려왔는데 70%는 안 좋은 일이었다. 누가 아프다. 뭔가 일을 시작했는데 자금이 부족하다.  

나는.... 나는 살림을 하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버는 돈보다 나갈 돈이 늘 더 많았다. 큰 가방을 둘러메고 시간에 쫓겨 동분서주하곤 했다. 일이 될 만한 건 놓쳐서는 안 되는 프리랜서      

그렇구나.

10년 전의 나는, 셀카는 건질 수 있었을지 몰라도, 생경한 외국 이름은 잘 외웠을지 몰라도, 이렇게 20일씩이나 혼자 여행을 나올 수는 없는 사람이었구나. 

그렇다면 10년 더 늦게가 아니라 오늘 여행할 수 있는 걸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니, 10년 뒤라면 어차피 혼자 여행할 수 있는 체력도 지력도 안 되고, 또 뭔가 확 달라져 있을 IT환경을 따라잡을 능력도 안 될 게 뻔하다.

그래서 오늘, 바로 오늘이 가장 적당한 날인 거다.     

요행히 덜 불쌍하게 찍힌 희귀셀카 한 장을 열어 보고, 다시 열어 보고.

그 사진을 여기저기, 가족과 친구들에게 쫙 뿌린다. 

     

유럽의 방랑자. 실시간 생존신고! 

          

유일하게 건진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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