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환영해!
무작정 걸었다. 지도 앱이 그다지 유용하지 못하다. 찍은 목적지를 쉽게 가도록 아무리 잘 알려줘도, 몇 분 간격으로 방향을 벗어난다. 파란색 점이 벗어났다고 내게 신호를 주면 불안해하며 접점을 찾기 위해 몸을 이쪽저쪽으로 돌린다. 길을 잃어버릴까 봐 긴장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불안함이 가끔 사라진다. 잘못 가면 다시 길을 찾아주겠지? 이런 마음이 드나 보다. 그땐 일부러 더 벗어난다. 가는 길목에 그림집, 각종 소품집, 액세서리 파는 가게, 재즈 바 등 뜻밖의 장소를 만나는 기쁨이 뒤따른다. (물론 지도가 친절하게 알려준 길을 가더라도 그런 것들은 당연히 있겠지만) 가게를 들락날락하니 소요시간은 자꾸만 늘어난다. 다리가 아플 때쯤 정신이 든다. '맞다! 나는 가야 할 곳이 있는데... '하며.
그래서 다시 똑바로 지도를 보고 걸었는데, 얼마나 방향치인지 오갔던 길을 세 번이나 왕복했다. 화가 나지 않는다. '아! 나 여기 지나왔던 길이네! ' 하며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길이 반갑다.
안도한다. 극도의 내향 성격을 가진 나는 낯섦과 익숙함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그렇게 내 안의 나로부터 빠져나오고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여행을 하는 이유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기다란 성벽을 만났다.
타페게이트. 수년동안 말로만 들었던 치앙마이 거리를 걷고 있다. 그것도 사람이 드문 시간, 한밤 중에 이 벽 앞에 서 있다. 겁도 안 나니? 내게 묻지만 흥! 나의 물음에 대꾸도 하지 않는다. 오래전 그날, 침략자를 막기 위해 지어진 성벽이니 나는 겁 낼 이유가 없다. (무슨 답이 그래? 음... 모든 문답이 명쾌하게 맞아떨어질 순 없다)
앞 뒤 성벽 모양이 다르다. 지금과 옛날이 공존한다. 무너진 성벽 앞에는 광장이 있어 늦은 시간이지만 밤을 즐기는 여행객들도 보였고, 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도 보여 나도 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한 사진을 남겼다. 가만히 손바닥을 벽에 대본다. 따뜻하다. 벽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궁금하다. 어떤 벽이었을까. 고대 무역의 주요 통로로 상인을 비롯하여 무역상, 여행자 순례자를 환영하는 문이었다고 한다. '환영'이라는 두 글자에 뭉클하다. 단번에 눈물이 그렁하다. 이유는 나중에. 타페라는 단어가 뗏목상륙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북적대는 낮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금은 너무 늦은 시간이다. 더 있을 수가 없다. 성벽이 이어진 길까지만 걸어야겠다. 벽의 끝에서 돌아서니 분명 온 길인데 다시 낯선 길을 걷는 듯하다. 길 한가운데 벽이 있어 한쪽만 보이는 게 당연한데 평화로운 광장이 아닌 씽씽 달리는 차들만 보이는 거리 앞에서 웃음은 사라지고 진지해졌다. 벽의 앞 뒤가 이렇게 다를 수가. 그저 무너진 성벽일 뿐이야. 하며 이내 무미건조한 결론을 지으려고 한다.
나는 수년간 내가 세운 벽 앞에서 넘어서질 못했다. 세상 밖으로 나를 내몰았다가 온 힘이 다 빠져서 예전의 동굴로 돌아왔다. 동굴을 감싸고 있던 오래 전의 울타리는 벽이 되어 높아져갔다. 답답함이 치미는 날, 혹은 시대의 흐름에 도태되고 있다는 걱정이라도 드는 날은 당장이라도 넘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주 잠시였다.
벽 앞에서, 아니 벽 안에서 머물던 시간이 족히 4년이 넘은 듯하다. 벽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타인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사이 내 삶에 실망하고 원망하는 시간도 쌓여 벽을 넘어서면 들킬까 봐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익숙한 내 삶에 안정감이 컸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무너진 성벽으로 우뚝 서있는 타페게이트는 적의 차단을 위한 성벽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여행객과 상인들을 환영한 것처럼 지금은 소통의 광장이 되어 누구나 타페게이트 앞에서 커피 한 잔 하며 각자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낯선 나라 낯선 성벽 앞에서 나는 애써 마음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벽을 돌아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괜찮았고, 그대로 벽이 있어도 괜찮은 거였다. 벽을 돌아서기만 해도 다른 길을 만날 수 있다. 아니, 꼭 다른 길로 급하게 들어서지 않아도 된다. 이 벽 앞에 있었노라고 알려주기만 해도 존재하는 것이다.
삶이 어찌 생각대로 한치의 틀림도 없이 살아질까. 그럴 수 없음을 알지 않는가. 소란스러운 삶을 벽 앞에서 다시 환영하고 싶다.
그래. 벽에서 돌아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