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구운 계란

말 한마디

by 주하

무언가 먹기엔 적절하지 않은 야심한 시간, 멸치국수를 먹으러 국숫집에 갔다. 메뉴판을 보니 구운 계란이 있다. 국수 두 그릇과 구운게란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맞은편 테이블, 옆 테이블을 보니 황갈색 구운 계란이 두세알 동그란 접시에 담겨 있다.

뜨끈한 국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아주머니가 계란부터 갖다 주신다. 얼른 하나 집어 들어 껍질을 까서 한 입을 깨물었다. 오물거리며 고소한 계란 맛에 심취하려는데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주인아주머니는 그 손님에게 계란 접시부터 갖다 놓는다.

'뭐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계란을...?'

의아했다. 알 길이 없으니 그사이 나온 국수에 집중했다. 뜨끈한 멸칫국물이 왜 그리 시원하고 칼칼하게 맛있는지. 어렸을 땐 입도 안 대던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싶다.

국물을 계속 들이키며 국수를 돌돌 말아먹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먼저 음식을 다 먹은 손님이 계산을 한다. 나와 똑같이 국수 두 그릇, 계란 두 개를 시켰는데, 좁은 가게라 아주머니가 계산대에서 부르는 값이 크게 들린다. 국수 두 그릇 값만 받는 게 아닌가.

그즈음 되니 계란은 주문 안 해도 제공되는 것이었는지 더 궁금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국수를 먹는 내내 계란의 정체였다. 또 다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도 국수값만 계산한다. 음식을 다 먹을 때쯤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 앉았다. 매의 눈으로 아주머니 움직임을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 주문도 하기 전에 계란을 준다. 이즘 되면 안 물어볼 수 없지 않을까?

신경 안 써도 될 것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이럴 땐 얼굴에 철판 한 장 깔아야 한다.

"아주머니! 혹시... 계란은 주문 안 해도 주시는 건가요?"

나의 당돌한 질문에 아주머니는 한마디로 말한다. 나는 한 글자로 ''아...''라고 말하며 다음에 오면 우리도 계란을 그냥 먹을 수 있을까? 까르르 웃었다. 그럼에도 왠지 서운함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단골한테는 그냥 주는 거야!"


왜 서운했지? 단골한테 준다는데... 단골의 기준은 무엇일까? 세 번 이상 오면 단골인가? 6개월? 1년? 모를 일이다.

이상한 건, 단골손님과 인사도 없고 안부 한마디도 없었고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단골과 사장의 특유의 정감과 친근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고요하게 먹는 소리와 벽에 달린 티브이 소리만 가게 안에 울린다.


여하튼, 그 후로 나는 국숫집을 여러 번 찾았다. 역시 무심한 아주머니는 인사도 없고 멸치국수 주문에 고개만 까딱한다. 단골은 아닌 듯하다. 아직 계란을 그냥! 받지는 못했다.

'멸치 국수 먹으러 왔지~ 계란 먹으러 왔나... '

그러면서 그 뒤로 우린 계란 주문을 더 이상 하지는 않았다. 묘한 구운계란, 더 묘한 인간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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