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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Dec 26. 2023

산타클로스와 조우한 아이.

언제까지 아이는 산타의 존재를 믿을까.


12월 24일 성탄 이브에 구에서 주최한 크리스마스 축제가 있었다. 올 한 해 아이가 세상은 좀 더 뚜렷이 보기 시작하며 여기저기 축제를 쫓아다닌 우리였다. 지난 한 주 최고 온도가 영하 5-8도까지 밖에 오르지 않는 추위에 어린이집을 제외하고 외출하지 못했던 아이는 많이 갑갑했으리라. 날이 풀리기 시작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우리는 주저 없이 축제에 가보기로 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교통편이 애매했다. 차를 가져가기엔 연휴 교통혼잡과 주차 문제가 걱정이었다. 아이 역시 멀미를 하기 시작하면서 차를 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카시트에 앉으면 언제나 “더워, 더워”한다. 아마 불편하거나 힘들 때 하는 아이 나름의 표현일 것이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전철을 타다 버스로 갈아타기로 했다. 아이 옷을 단단히 여미고 우리는 출발했다.


서 있는 탑승객을 본 것인지 전철을 탈 때면 아이는 꼭 손잡이를 잡고 싶어 한다. 조금 위험하지만 나는 상체를 쇠기둥에 살짝 기대고 아이를 안는다. 아이는 흔들리는 손잡이를 살며시 잡고는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간혹 노인 분께서 노약자석을 비우며 앉으라고 권하시지만 우리는 멋쩍게 웃으며 사양한다. 아이가 앉을 생각을 안 하니. 다행히 다섯 정류장 정도만 지나면 내릴 테니 나는 힘들지만 아이를 안고 버틴다.


에스컬레이터에 다가서면 나는 더욱 긴장한다. 혼자 계단 하나를 차지하며 타고 싶어 하는 아이 때문이다. 아이를 안아 에스컬레이터 계단에 태우면 스스로 서 있겠다는 표시로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다. 나는 혹시 아래로 떨어질까 노심초사하여 에스컬레이터를 오를 때나 내려갈 때 아이 뒤나 앞에 선다. 끝에 다다를 때에는 아이를 드는 타이밍과 내가 계단에서 내리는 타이밍을 잘 맞춰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집중한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아이는 무언가를 혼자 해낼 때의 성취감을 학습한 듯하다. 저 뿌듯한 표정을 보면,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 혼자 서 있을 수 있다는 성취감은 아이에게 작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물론 조금만 더 자라면 에스컬레이터 타는 것 따위는 아이의 성취욕을 0.1 밀리그램도 채우지 못하게 될 테지만.


아이의 느릿한 걸음을 재촉하여 우리는 겨우 축제가 열리는 공원 입구에 들어섰다. 사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길에 내 손을 홱 뿌리쳐 버린 아이에게 삐쳐있었다. 언젠가부터 길을 걸으며 아이는 나의 손을 잡지 않는다. 아내의 손을 잘 잡는 걸 보면 단순히 혼자 걷고 싶어서 그렇지는 않을진대. 굳은살에 거칠한 손바닥 때문인지, 내가 손을 잡는 방법이 잘못된 때문인지,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때로는 크게 서운해진다. 아이에게 삐치면 부모의 권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는데 감정이 잘 갈무리가 안 된다.


평소와는 다르게 축제장 입구에서 사진을 찍을 때 아이 표정이 굳어 있었다. 필시 삐친 내 기분이 드러난 굳은 표정을 눈치챘기 때문이리라. 공감은 지능의 문제라 했다. 내 눈치를 살피는 아이의 명석함이 한편으론 기특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든 죄책감이  더 크다. 나는 미안해졌다. 공원을 조금 들어가며 이제는 달리지 않는 기차 객실 칸 안에 들어가자 했다. 아이는 신나서 와아~ 하며 달려간다. 아주 오래 전 옛 기차 좌석에 앉아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니 그제야 찡긋 웃으며 양쪽 볼 아래 이쁜 보조개를 보인다. 아이가 웃자 나도 웃는다. 속 좁은 스스로를 탓하며.


가려진 부분 뒤로 긴장한 표정이 있다.


인파를 뚫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크리스마스 캐럴 공연 리허설 중이었다. 이미 무대 앞으로 플라스틱 좌석은 가득 차 있었고, 무대 옆과 좌석 뒤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리허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를 안아 들고 10명 남짓한 합창단원들의 캐럴을 구경했다. 어린이집에서, 그리고 집에서 들었던 익숙한 캐럴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자 아이는 신나 했다.


무대를 지나자 크고 둥근 버섯 같은 거대한 나무 모양의 구조물 아래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런 건 놓칠 수 없지. 아이도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 사슴을 보곤 가까이 가고 싶어 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찾았으나, 이런, 이미 너무 많은 가족이 줄을 서 있어 마감(?)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에게도 안타깝지만 나중에 사진을 찍자 위로하고 우리는 그곳을 지나왔다.


축제 먹거리를 놓칠 수는 없는 법. 좀 더 안 쪽으로 들어가자 푸드 트럭들이 나타났다. 리허설 중인 공연장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줄을 서 있었다.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푸드트럭은 이미 긴 줄 끝에 매진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 아이는 ‘소떡소떡’을 외쳤다.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와중에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무대로 가 공연을 보겠다 하고 나는 소떡소떡과 타코야키를 사기 위해 줄에 남아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멀리서 소향과 목소리가 비슷한 분이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휴. 좋은 무대를 보지 못해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먹고 싶은 걸 사가는게 아빠에겐 더 중요한 일이다. 음식을 사서 소리와 사람으로 가득 찬 여기저기를 헤매다 마침내 아내와 아이를 찾았다. 우선 좀 먹고 다시 오자. 우리는 루돌프 쉼터라 불리는 큰 천막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사 온 음식을 먹었다. 아이는 소떡소떡을 먹을 줄 안다. 소시지 한 입, 떡 한 입. 오물오물 씹고 타코야키 한 입도 번갈아가며 먹는다. 맛있다.


신나게 배를 채우고 다시 나왔을 때, 공연은 거의 마무리되어 갔다. 그때였다! 아까 전 사진을 찍지 못한 루돌프가 나무 구조물 앞에서 다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번엔 아까와는 다르게 따로 줄이 있거나 사진 촬영을 통제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한 아이와 막 촬영을 끝낸 루돌프에게 우물쭈물 다가가 사진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루돌프는 흔쾌히 촬영을 허락했다! 내가 아이를 루돌프에게 안기는 사이 아내는 허겁지겁 폰을 꺼내 들었다.


붉은 조명으로 무언가 좀 무서운 분위기가 연출된 사진이지만 아이는 신났으리라.

 

어머나. 루돌프와의 촬영을 마치자마자 뒤편에서 산타클로스가 등장했다! 아마 축제의 마지막에 산타와 루돌프의 서비스가 아니었을까. 역시나 산타할아버지도 기꺼이 아이를 안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산타할아버지에게 안긴 아이도 신이 났는지 다리를 흔들흔들 거리며 마스크 속으로 씽긋 웃음을 지었다. 아내와 나는 앗싸!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션 클리어다. 애초에 축제에 오면서부터 아이에게 산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런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니. 큰 성공이다. 아. 물론 어린이집에서 한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이미 산타를 만나긴 했지만…


언제까지 아이는 산타의 존재를 믿을까. 재작년, 작년과는 다르게 올 크리스마스에 좀 더 자란 아이는 여러 캐럴을 접하며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분명히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게, 서언물을 안 주신대” 노래를 흥얼거렸다. 울지 않고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만 선물을 받는다고 말하는 걸 보면 가사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울지 않거나 떼를 멈추진 않았지만, 최근에는 위 내용을 핑계로 아이를 달래기도 했다.


아이의 풍부한 상상력은 굉장히 놀랍다. 놀이를 할 때, 엄마와 아빠의 모습과 행동을 흉내 낸다. 외할머니께서 안구건조증으로 인공눈물을 자주 넣으시는데, 아이는 주머니에서 꺼내 안경을 벗고 신중하게 인공눈물을 넣는 그 모습의 절차와 디테일을 살릴 줄 안다. 작은 명함보관함은 아이의 핸드폰-‘햅듭폰’이라 발음한다-이 되고, 예전에 촛불집회 때 내가 샀던 led 초는 아이의 마이크가 된다. 때로는 스스로 티라노사우르스가 되어 나와 아내를 쫓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호랑이가 되어 아이를 쫓으면 까무러치듯 비명을 연기한다.


분명히 나의 입모양과 목소리를 인지하고 있지만, 내가 들고 연기하는 인형과 정말로 대화를 나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을 때, 내가 정말 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 먹은 게 아닐까 오해할 정도로 오물오물 씹는다. 자신의 싱크대에서 아빠가 하는 그대로 세재를 짜 접시를 설거지한다. 아. 양말은 아이의 고무장갑이 된다. 그리고 공룡과 괴물,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의 존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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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인간은 진화 속에서 생존을 위해 의식(consciousness)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과 타인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게 되었다. 특히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고자 하는 의식 행위가 상상력을 빚어내었으리라 나는 믿고 있다. 이런 상상력을 통해 인간은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지식을 축적하고,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대부분의 우리는 이제는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익숙한 삶 속에서 상상력이 메말라 감을 느낀다. 때로는 그저 관성처럼 흘러가는 대로, 정해진 일들을 수행하는 기계가 된 듯도 하다.


이런 생각과 새로움이 결여된 일상 속에서 아이가 보여주는 풍성한 상상력은 새삼 새롭다. 이 또한 아이를 키우며 가지게 되는 큰 행복일 것이다. 매번 이런 놀라움을 선사하는 아이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 한편으로는 부모로서 아이의 상상력을 되도록 오래 지켜주고 싶다는 의무감(?), 책임감(?)을 느낀다. 아이의 놀이에 더 잘 참여해 줘야겠다. 아이가 산타클로스나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더 귀 기울여주고, 더 많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다음날 아침에 그래서, 나와 아내는 아이의 선물을 준비했고, 잠에서 깬 아이는 산타클로스로부터 받은 귀여운 분홍 곰인형을 안고 너무나도 좋아 방방 뛰었다.


아이가 직접 찍은 산타클로스의 선물.


나는 언제까지 산타를 믿었을까.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테트리스 게임기나 비발디의 <사계> 테이프를 선물로 받은 거 정도 말고는 내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우리 아이도 지금의 이 경험 중에 어떤 장면을 얼마나 기억하고 남길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아마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즈음에는 치열한 입시 경쟁의 출발선상에 서게 되거나 SNS에서 남의 하이라이트를 바라보며 부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뭐. 모르겠다.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아이에게 덜 삐치고 더 잘 놀아주는 거라도 잘해야겠다.


맨날 <나 홀로 집에>만 보며 연말 연휴를 보낸 지질한 내가 어느샌가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니. 격세지감이다. 지금이 나의 heyda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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