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일기
한 친구가 유튜브에서 명상에 관한 ebs 영상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한 일본인 정신과 의사가 마음 챙김 명상을 강조하면서 영상이 시작되었다. 뇌가 일을 많이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Default Mode Network라는 부분이 과도하기 활성화된다고 한다. 그럼 몸을 쉬게 하더라도 쉽게 피로가 풀리지 않게 된다. 뇌를 쉬게 하기 위해서는 DMN의 활동을 줄여야 하는데 마음 챙김 명상이 큰 효과가 있다 주장하였다. 그 외에도 명상을 오래 한 사람은 텔로미어(Telomere)라는, 유전자의 끝에서 유전자를 보호해 주는 부분이 두터워져 더 건강히 오래 산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한, 타인과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태도도 뇌를 쉬게 하는데 큰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https://youtu.be/9gZncPWKV-A?si=16p25o5CQtgBPaLt
여하튼 요즘 마음 챙김 명상에 푹 빠져 있어서인지 나는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시청했다. 그 순간 갑자기 예고도 없이 광고가 튀어나왔다. 흐름을 완벽히 방해하는, 나의 평화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타이밍이었다. 어느 순간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무료 사용자에게 5초짜리 광고가 재생되기 시작했고, 또 언젠가부터는 광고가 2개, 혹은 15초짜리가 끼어들었다. 아이씨. 내 평화롭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소셜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내가 이용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문제에 관한 다큐였다. 핵심은 이랬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고객은 ‘사용자’가 아니라‘ ’광고주‘이며, ’상품‘인 사용자가 플랫폼에 ‘상주하는 시간’을 늘려 광고에 더 오래 노출시키는 것이 이 기업들의 지상과제라는. 인공지능 알고리듬을 이용하여 각 개인의 성향에 맞춘 콘텐츠를 추천하며 더 오래, 더 깊이 자신의 플랫폼에 머무르게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지상 과제인 이익 창출을 위해, 소셜미디어에 빠져 허우적대며, 서로 비교하고, 자기 파괴적이 되고, 도파민 중독이 일어나고, 황폐해지는 사용자의 정신건강 따위는 관심이 없다. 이는 특히, 뇌 가소성이 큰 청소년들에게 큰 악영향을 끼치지만. 얘네는 그런데 관심이 없다.
그런 황폐한 플랫폼에서도 마음 챙김 명상이나 철학과 과학, 인간관계와 자기 계발, 긍정적인 삶으로 유도하는 교훈적인 콘텐츠를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런 문제점을 인지하고도 때로는 끊임없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탐닉하는 나 스스로에게서도 크나큰 모순을 느낀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모순적이며 동시에 모순적이지 않은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나는 학교에서 피부로 느낀다.
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은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졸거나 잔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언제나 교과서와 학습지, 필기도구를 가져오지 않는다. 대부분 무기력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높은 텐션으로 수업을 방해한다. 냉소적으로 선생님을 비웃고, 지도를 해도 히죽히즉 웃거나 대들기도 한다. 물론, 내 시간에는 그렇지 못하다. 왜. 내가 폭언과 폭력 없이 무섭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깨어있고, 가끔 교과서와 필기도구를 빌리고 학습지를 챙겨 온다. 졸면 깨우고, 또 졸면 화장실에서 세수하게 하고, 그것도 안되면 책상 테두리에 앉힌다. 학습지와 필기도구를 가져오지 않으면 방과 후에 영어 단어 공부를 시킨다. 수업 결손 학생을 남겨서 영어 공부까지 시켜주는 자상한 교사다 나란 놈은.
그의 얽힘, 모순은 사정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장기간 격리, 방임, 소외, 학대를 당해왔다. 자세한 내막은 밝힐 수 없으나 현재는 시설에서 보호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부모의 관리가 없으니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 학교에 와서 자기 일쑤였던 거다. 아니, 학교에 꼬박꼬박 나와주는 것이 고마운 일일까. 그나마 아직 자해나 분노조절장애, 조현병 같은 정신적 문제까지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인 걸까. 교사의 입장에서 그의 삶은 멀리서 보면 연민을, 가까이서 겪으면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런 모순적인 아이들은 학교에 많이 있다.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공부하며 다시 손에 든 책 중에 마이클 센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책의 사례 중에 아프리카의 검은코뿔소 사냥이 있었다. 책임자에게 돈을 내고 유흥으로 검은코뿔소를 사냥하는 시장이 있고, 거기서 그 돈을 받은 책임자들은 검은코뿔소의 생존을 돕는다. 밀렵도 막으면서. 구매자는 합법적으로 코뿔소를 사냥하고, 책임자는 합법적으로 돈을 번다. 사냥당하는 개별 코뿔소는 죽임을 당하지만, 이 멸종위기종의 개체수가 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이 뒤섞인 지극히 모순적인 상황이다. 세상은 모순덩어리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도, 나라는 인간 자체도. 내가 느끼는 감정도 동서남북 뒤죽박죽이다. 이를 다 이해하려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난다. 때로는 이런 모순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때로는 도망가기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