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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14. 2024

손 잡으자.

아빠의 자격.

 

다행이다. 결국 수능 감독하러 오라는 연락은 없었다. 나는 예비 감독이라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혹시 누군가 빈자리가 생기면 튀어갈 수 있도록 오전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오후가 되자 졸인 마음에 여유가 몽글몽글 생겼다. 아내를 픽업했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비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아이고. 선생님 말씀이 아이가 낮잠을 안 잤단다. 오늘 잠을 재울 때 또 한 따까리 할 기세다.


저녁 9시 즈음 엄마가 동화책을 하나 읽어주고 우리는 불을 껐다. 아이가 방귀를 뽀오옹 뀌고 우리 셋은 키득키득거렸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무슨 심술이 난 걸까. 엄마에게 손수건으로 자신의 이마에 땀을 닦아달라 끊임없이 칭얼댄다. 발을 힘껏 올려 엄마의 몸을 여기저기 두드린다.


엄마가 다섯 번 닦아준다고 하자 여덟 번 닦으란다. 한 동안 고집을 부리다 세 번으로 줄이고 나서야 다섯 번으로 합의를 봤다. 그러자 이제는 잠이 안 온단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슬금슬금 감정이 올라왔다. “잠이 안 오면 어떻게 할 건데?” 짜증 섞인 말투로 내가 묻자 아이는 침대 위에서 혼자 놀 거란다.


몸을 침대 아래로 흐느적흐느적 내리더니 엄마의 다리를 펴라며 트집을 잡는다. 자신의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괜한 심술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사뭇 달라진 톤으로 아이에게 경고한다. 계속 그렇게 트집 잡고 생떼 부리면 혼자 자게 한다고 협박했다. 똑바로 누우라고.


아이는 잠시 누그러진 듯하였으나 이내 내 몸과 아내 몸에 다리를 올리며 툭툭 친다. 간을 보는 것이다. 안 되겠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키고 엄마에게 밖으로 나가자 말했다. 아이는 엄마 엄마를 외치며 큰 소리를 내었다. 자신의 몸을 감싼 엄마의 팔을 꼭 잡았다.


내가 엄마 팔에서 아이의 손을 떼어놓자 아이는 기어이 뿌앵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감정을 실은 말투로 아이를 혼낸다. 엄마 엄마 하며 엄마가 덮은 이불을 잡아당긴다. 엄마 팔에 안기는 것도 안된다 하니 끄억끄억 하는 목으로 “그럼 나 삐질 거야”라고 대꾸한다. 삐져도 소용없다고 나도 지지 않고 말한다. “아빠 미안해요”라며 운다.


에휴. 아이의 울음은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아이가 한 “미안해”라는 말도. 나는 그럼 엄마 팔만 감싸고 짜증 내지 말고, 트집 잡지 말고 조용히 자라 한다. 감정이 실린 따박따박한 명령조다. 아이는 흑흑거리다 겨우 진정이 되었다.


나는 침대 구석에 누워 한숨을 푹 쉰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아빠가 딸에게 권위적이면 답이 없다 했다. 아이의 학업 성취도도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사춘기 이후 부녀간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했다. 그러니 훈육은 엄마에게 맡기고 아빠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조언했다. 쭈그려 지내야 한단다.


우리 집은 아내가 무던하고 내가 호들갑이다. 아내도 아이에게 화를 낼 때가 있지만, 보통 내가 혼낸다. 아니. 혼낸다기보다는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한숨을 쉰다. 아이에게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딱 두 번. 아이가 손으로 나를 때렸을 때와 아내에게 멍청하다고 했을 때. 감정을 죽이고 아이의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기를 꺾은 훈육을 한 적이 있다. 울음을 그친 아이를 안았을 때 “아빠가 나 꼭 안으니까 아파. 다음부터는 하지 마”라는 말을 들으니 코끝이 찡했다. 서툰 아빠라 미안했다.


아이가 고집을 부릴 때, 아이가 원하는 것을 소거하는 방식의 대화도 고쳐야 하는데 쉽지 않다. 계속 이러면 앞으로는 빼빼로 안 사줘 같은. 방금도 계속 칭얼대면 엄마 아빠는 방을 나갈거야 같은.


아이의 감정이 누그러지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아이는 왼팔로 내쪽 이불을 훑었다. 그리곤 작게 속삭인다. “아빠 손 잡으자.“ 언젠가 누가 말했다. 아이는 언제나 부모를 용서한다고. 나는 이불 밖으로 손을 뺐다. 아이의 작은 손이 내 검지손가락을 감싼다. 그러더니 아이는 곧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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