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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urth Daughter Nov 01. 2021

11월 1일에 부쳐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있다. 엄마가 엄청나게 좋아하셔서 어렸을 적에 많이 들었던 노래로 지금도 라디오에서 나오면 입에서 가사가 술술 흘러나올 정도로 익숙하다. 1981년즘에 나온 옛날 노래인데도 매년 10월 31일만 되면 많이 회자되고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 때문일 것이다.  (노래가 주는 힘은 정말로 엄청나다. 더불어 옛날 노래는 어쩜 가사도 이렇게 예쁘고 시 같은지.... 요즘 노래 가사는 갖다댈 게 아니다.)


아무튼 어제도 10월 31일이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딱히 기억할 것도 없고, 노랫말처럼 누구랑 헤어진 적도 없는 10월의 마지막 밤인데도 어쩜 그렇게 센치해지는지. 원래 가을 타는 성격이 아닌데도 어제는 기분이 조금 울적했다. 


어제가 10월 31일. 그리고 오늘이 11월 1일. 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했고, 일을 했고, 또 볼일도 몇 개 보고, 엄마와 조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문득 11월 1일도 기억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  


이상하게도 10월 31일이 지나면 한 해 다 같 것 같은 센치한 기분이 들며, 다음날부터는 마음은 곧장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달려간다. 오늘 낮에도 매년 이맘때 그랬듯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크리스마스 캐롤을 찾아 추가했다. 그리고 12월 연휴가 언제인지 달력을 찾아보았고 12월 남편과 함께 갈 여행지와 숙박시설을 선택해서 예약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11월은 그냥 '끼인 달' 느낌으로 늘 보내게 된다. 휴일이 없는 달이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에잇. 그래. 올해 못한 일은 내년으로!', '아, 이걸 못했네. 올해 글렀네.', '12월 연말 가족 여행은 어디로 가지?', '연말 계획은 이렇게 하자' 등등의 생각이 들면서 이전의 것을 후회하고 이후의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곤 한다. 그래서 11월 자체를 알차게 보낼 생각은 잘 하지 않게 된다. 


매년 쓰는 다이어리를 다시 펼쳐보면 11월만 내용이 많이 비어있다. 10월까지 잘 쓰던 다이어리인데도 11월이 되면 '에잇. 얼마 안 남은 다이어리 열심히 쓰면 뭐 해?'라는 생각과 함께 기입에 소홀해진다. 손때 묻어 좋던 다이어리도 이제는 조금 지겨워져, 남은 칸에 뭘 더 채워넣고 싶다기보단 내년 다이어리는 어떤 스타일을 살지, 어떤 계획을 세울지 마음이 쓰이는 시기이다. 벽달력도 종이가 딱 두 장밖에 남지 않아 뭔가 초라하다.


그냥 빨리 갔으면 하고 바라는 시기, 뭔가 새롭게 뭘 하기도 애매한 시기, 다음이 기다려지는 시기, 대충대충 얼렁뚱땅 살게 되는 시기. 11월이 그런 시기이다. 문득 11월에 미안한 생각이 드네. 아직 나에겐 11월이 30일이나 있는데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어리를 꺼내서 11월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써봐야겠다. 11월아,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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