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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May 03. 2023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지

<개인적인 체험> 오엔 겐자부로

 

 청춘을 떠올릴때 이십 대와 삼십 대 언저리에 있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간다해도 더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 순간의 나도 능력만큼 최선을 다했을 거라 자신을 믿어 주고 싶다. 다만 그때의 마음을 불러올 수 있다면 갈팡질팡하던 불안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고 싶다. 드디어 어른이 되었구나를 생각하게 된 시기도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바로 그즈음이었다. 어른의 첫맛은 쓴것도 단것도 아닌 미적지근한 맛이었지만, 미성숙한 어른의 불안함이 늘 함께 있었다.



 오엔 겐자부로의 소설 <개인적인 체험>의 주인공 버드 역시 그즈음에 서 있는 남자다. 3개월치의 월급과 바꾼 아프리카 지도를 손에 쥐고, 쥐어질 것 같지 않은 먼 나라를 꿈꾸는 남자이면서 현실에선 자신을 기다리는 분만 중인 아내가 있는 남자이다. 내 삶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순간들은 어른의 초입기에 겪었던 그 시기를 잘 설명하고 있다. 현실의 세계에서 세련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버드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버드는 아내가 낳은 아이가 두개골 결손으로 뇌의 내용물이 빠져나온 <뇌헤르니아>라는 질병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크며 현재는 머리가 두 개가 달린 붉은 괴물 같은 모습으로 의료진마저도 당황스러워하는 상태다. 버드는 아기가 살아남지 않기를 바란다. 우유가 아닌 설탕물을 마시게 해서 점점 기력이 사라지도록 의사와 은밀히 이야기 나눈다.  아기의 존재가 소멸하기를 바라는 버드는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해 부단히 발버둥 친다. 병원에 있는 아내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해 옛 여자친구 집에서 지내며, 밥벌이인 학원 강사 일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있는 힘껏 그의 삶에서 달아나려 하지만 그의 다리엔 보란 듯이 살아 숨 쉬는 아기와 가족이 있다.



 수술을 하자는 의료진들의 설득을 뿌리치고 버드는 여자친구와 함께 아기를 불법적으로 처리해 주는 의사에게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범행은 아프리카로 함께 떠날 수 있는 기회와 더 가까워지는 일이며 버드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여곡절 끝에 버드는 아기를 보내지만 보낸 후 그는 더 혼란 속에 빠진다. 다시 아기를 데리러 가겠다고 결심하자 여자친구는 그를 만류한다. 버드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그건 나를 위해 서지. 내가 도망만 치는 남자이기를 멈추기 위해서야. 도망쳐 다니며 책임을 회피하는 남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을 잃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행동이 나일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우리의 인생은 내 삶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지배하게 된다. 자신을 잃을 수 있는 일에 자꾸 마음이 흔들리는 건 그만큼 자신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힘들지만 내 의지로 살아가는 일.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내 생각을 곧추세워 결정하는 일에 의연해지는 일이 바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이십 대의 버드에게 그 과정은 쉽지 않은 여정이며 우리도 그 시간을 경험했기에 이해한다.



 버드는 자조한다. '내가 아기 괴물에게서 수치스러운 짓들을 무수히 거듭하여 도망치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 했던 것일까? 대체 어떤 나 자신을 지켜 내겠다고 시도한 것일까?' 평생 장애아의 아버지로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버드는 여러 탈출구로 기행을 저지르며 발버둥 친다. 하지만 다른 것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있지만 오직 자신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음을 직면한다. 



 오엔 겐자부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두 가지의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하나는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긍정적인 결말을, 또 하나는 <허공의 괴물 아구이>라는 소설로 그 반대되는 상황을 그렸다. 아마 실제로 아이를 받아들일지 거부할 것인지를 고민하던 작가 자신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쓴 소설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에게는 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의 삶이 그의 다른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인간적인 절망과 싸워내는 작가의 고뇌가 섬세하고 잔인하도록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작가 오엔 겐자부로는 그의 삶에서도 스스로에게 도망치지 않는 인생을 보여주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대작을 만들어낸 것과는 별개로 그는 부모로서도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모습을 보인다. 2023년 3월 작고한 작가를 향해 여러 문학인들과 다양한 그의 지지자들이 그에게 위로와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식에 다시 한번 그의 작품을 돌아보게 만든다.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다시 내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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