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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Jun 29. 2023

나의 보잘것없는 슬픔

영화 <나의 사소한 슬픔>


 두 아들의 방학이 시작되었고 그들의 방은 이미 텅 비었다. 큰 아이는 친구들과 유럽 배낭여행을, 작은 아이는 친구를 만나러 더 먼 곳으로 떠났다. 짐을 싸느라 부산했던 순간은 휘리릭 지나가버리고, 떠난 빈자리를 더듬으니 마음 한구석이 휑해진다.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마음은 늘 제멋대로다. 그들의 시차에 맞춰 내 마음도 깨어나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마음은 안개 같아서 기쁜 마음과 쓸쓸함이 무늬를 이루기도 하고 보고 싶은 마음과 애잔한 마음, 그리고 공허한 마음은 함께 또 따로 박자를 맞춘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얼마나 더 다양하고 복잡한 마음을 만나게 되는 일일까를 생각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캐나다 영화 <나의 사소한 슬픔>이란 영화에는 죽고 싶어 하는 언니와 그녀를 말리고 싶어 하는 동생이 있다. 기차가 달려오는 기찻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아빠에 대한 아픈 기억을 공유하는 자매다. 그들 내면에는 깊은 공통의 상처가 숨겨져 있지만 그 상처를 서로 보듬기엔 각자의 기억은 너무 아프고 무겁다. 언니에게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과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한 돈과 명예도 있다. 그런 언니가 자살시도를 하고 실패를 거듭한다. 그녀는 스위스에서 존엄사를 맞이하고 싶다며 마치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듯 동생에게 나직하게 고백한다.



 동생 율리는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과 반항기의 딸과 그리고 소설가이지만 제대로의 글을 쓰지 못하는 괴로움을 안고 산다. 매일의 일상에 허덕이는 율리가 언니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집과 여유로운 그녀의 삶 속에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언니를 바라보는 율리의 눈빛에 내 마음도 얼어붙는다. 사랑하지만 타인일 수밖에 없는 언니의 마음을 향한 안타까움이다. 사랑하기에 온 마음으로 그녀를 이해하려고, 또 설득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언니의 표정은 견고하게 닫힌 철옹성 같다. 같은 고통을 경험했지만 그 기억을 다른 모습으로 체화하는 두 자매. 자살이란 선택을 하는 것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일까.



 인간이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사랑의 마음이 존재한다. 이해받지 못했던 각자의 사소한 슬픔이 있기에 그 기억을 더듬어 타인을 바라본다. 슬픔의 이해에는 슬픔을 받아들이려는 깊은 사랑의 마음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부족할 것 없는 언니가 죽음으로 가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율리의 마음이 표정에서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엎치락 뒤치락하며 보는 이 역시 괴로움에 빠지게 한다.



 누구에게나 사소한 슬픔은 존재한다. 성공의 영광 아래에서도 극진한 사랑 앞에서도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에서도 사소한 슬픔은 여기저기 분무기에서 뿜어 나온 소독약처럼 우리의 삶에 퍼져있다. 타인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모르나 내게는 보잘것없지만 사소하지 않은 슬픔이다. 거대한 불안과 사소한 슬픔 속에 우린 늘 허우적대지만 그 마음을 다독이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지극한 사랑의 마음에도 상대의 슬픔과 불안을 껴안을 수 없기에 무력함을 느낀다. 사랑하는 언니를 보내는 율리의 슬픈 눈물에 함께 마음이 무너진다.

언니 엘프리다와 동생 율리가 함께 읊었던 시가 있다.



나에게도 자매가 있었다 딱 한 명의 자매가

그녀는 날 사랑했고 난 그녀를 소중히 여겼다

그녀에게 내 사소한 슬픔을 전부 토해낼 수 있었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시 >



율리는 언니의 죽음 후 소설을 완성한다. 언니가 궁금해했던 그녀의 소설에는 그들 자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읽지 않았지만 알 것 같은 그들의 따뜻한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마음에 느껴진다. 율리는 아마도 소설을 통해 언니를 느끼고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이다. 철저한 타인이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는 함께이기를 기도한다. 네 아픔을 나도 느끼고 싶어 한다는 마음이 서로 통할 때 우리는 불안하고 슬픔 가득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열쇠를 찾게 된다.



 새벽녘에 아들들은 사진과 안부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름 모를 웅장한 교회 배경 속에 아들이 해맑게 웃고 있다. 작은 아이는 푸드 트럭에서 먹은 타코의 맛을 기록한다. 기쁨으로 가득한 그들의 미소에도 짊어져야 할 갈등과 사소한 슬픔은 순간순간 떠오를 것이다. 각자의 삶을 향해 충실히 나아가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떨어져 있지만 서로에게 연결된 사랑의 마음이 거미줄처럼 내 보잘것없는 슬픔을 묶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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