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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04. 2021

등뼈의 근육통

산에는 꽃이 피네, 법정 스님, 류시화 엮음

0.

이마에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졌다.

작년에는 젖어 있기만 했던 천장은

이틀 내내 내리는 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나 보다.


몸을 한쪽으로 틀어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막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괜찮다고, 천장을 다독였다.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다.

의자 하나를 현관에 걸치고 앉았다.

괜히 읽었던 글이 떠올라 허리를 바짝 폈다.



1.

늘 허리를 바짝 펴야 한다.
허리를 바짝 펴면 정신이 가장 맑아진다.
허리가 삐딱하면 정신이 죽어 있는 것이다.
남의 흉을 많이 보는 사람은 허리가 삐딱해진다는 말이 있다.
허리를 빠짝 펴면 남 흉볼 여력이 없다.
허리를 바짝 펴면 눈이 저절로 자기 코끝으로 온다.
자기 허물만 살피는 것이지 남의 허물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법정 스님, 류시화 엮음


허리 굽은 채로 했던 말들이 내게 돌아왔다.

좋은 말, 바른말인 척 우겼던 그 흉봄들이

그 허물들이 사실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아니라고 우겨도 명백한 증거들이 있다.

굽은 내 허리가 여전하고

그리고 무시하고 지나갔던 찝찝함 들을 내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싫은 그 위선이 내게서 보인다.

내가 싫어지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나는 나의 편이어야 하기에 손을 놓을 수 없다.


허리를 편다는 것은

본다는 것의 경계를 내 몸 안쪽으로 한정시키는 것이다.

자꾸 내 잘못이 아니라고, 밖을 보려고만 하는 이 아이는 허리를 숙여 너를 보려 한다.


이제 그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이는 모르기에

나는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2.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
자신의 등뼈 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는 안정된 마음 야말로 본래의 자기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법정 스님, 류시화 엮음


싫었던 너를 피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다시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 내게 있었던 문제이니까.


어디에도 기대서지 않기 위해서 네가 여전히 필요하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등뼈에 의지하기 위해서

본래의 자기로서의 첫걸음마를 위해서


그렇게 되어야만

오늘의 이 등뼈 주변의 지독한 근육통이

모든 좋고 싫고의 마주함이

논리적일 수 있게 되니까.



3.

내리는 비가 뱉었던 말처럼 바닥에 고여있다.

바닥도 나처럼 허리가 굽어 본인의 구배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들은 한동안 그 무게를 견뎌야 할 것이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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