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6 세 번째 델리 그리고 산치대탑](1)

인도 불교 유적 순례기 : 세 번째 델리 편

by 노루

세 번째 델리

2018.10.07~2018.10.08


1. 스님의 아이패드


델리로 돌아가는 버스가 출발하기 한 시간 전 쯤, 멕로오드간즈 광장 오른 편에 있는 난간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중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 옆에는 내 나이 또래의 티벳의 승려 한 분이 앉아 계셨다. 나하고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자신도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나라 말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셨다.


젊은 스님은 오른손에 아이패드와 왼손에는 비싸게 보이는 시계를 차고 계셨다. 왠지 최신식으로 무장하신 스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서였을까? 이 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승려 분들이 고급시계와 아이폰을 들고 다니셨다. 뭐, 들고 다니는 수도 있는 것이였지만,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님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바랬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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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레오드간즈 옆 난간에 벤치가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곳에 많았다.


2. 엄마와 딸


버스를 타기 바로 직전에,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 양 내장 볶음을 먹었다. 식감은 꼬들꼬들했고, 맛은 씹으면 씹을수록 한국에서 먹던 곱창 맛이 났다. 한 접시를 비우니, 몸에서 힘이 펄펄 나을게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먹던 걸 먹어야 하나보다.


사설버스 정류장은 멕로오드간즈 광장 바로 아래에 있었다. 나도, 여행사 사장님께 받은 문자를 보고, 차를 찾아 나섰다. 버스를 확인하고 올라타려고 보니, 한국분으로보이는 여자 두 분이 계셨다. 델리로 가는 버스를 찾고 계셨는데 와우까페를 통해서 받은 티켓정보와 버스정보가 일치하지 않는 듯 보였다.


왠지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듯싶어서, 따님이 받은 메시지를 차장에게 직접 보여줬다. 차장도 그 문자를 보고 나서야, “와우까페에서 예약한 두 사람? 이거 맞아!”라고 답해주셨다.


차에 타시 다시 인사를 드렸다. 두 분은 모녀 관계이신데, 같이 여행을 오셨다는 것이셨다. 지금은 다람살라 여행을 마치고, 델리로 돌아가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실 계획이라고 하셨다.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었다. 만약 가족이랑 오게 된다면, 아니 다른 누군가와 오게 된다면 그 사람을 챙기면서 이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정말 귀찮아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투정부리며 불평했을 것이다.


3. 수화


모녀는 수화를 통해 대화를 하였다. 인도는 항상 소리로 가득했지만, 둘의 대화는 고요했다. 두 분이 대화를 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어떤 대화가 오고 가고 있을까? 추측해보지만, 나는 들을 수가 없었다.


말로 하는 언어와는 많이 달랐다. 소리가 없었지만 분명히 듣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오고 가고 있을까? 더 생각해보니, 수화나 소리로 하는 말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듣고 싶은 데로만 듣고 있었으니 말이다.


눈으로 만드는 소리나, 입으로 만다는 소리나 결코 다르지 않았다.



4. 세 번째 델리


델리에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새벽 다섯시 쯤이었다. 계속 잠을 자면서 와서 그런지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었다. 올라갈 때처럼, 멀미를 느낄 새도 없었다.


델리의 공기는 여전히 텁텁했다. 가래를 퉤 뱉고, 모녀와 같이 지하철로 향했다. 모녀는 공항 근처의 에어로시티의 호텔로 향했고, 나는 종민씨를 만나기 위해 빠하르간지로 향했다. 그렇게 케시미리게이트 역 안에서 그 분들과 작별했다.


뉴델리 역에 도착했지만, 아직 해가 뜨기 전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종민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약 3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역 출구 앞의 노점에 자리를 깔고 앉아 일기를 썼다.



5. 델리의 매연


델리는 급성장 중인 인도의 수도답게, 유독 매연과 먼지가 진한 곳이었다. 직접호흡하기 꺼려질 정도의 수준이니, 내가 지나 온 곳 중 가장 공기의 질이 좋지 않은 곳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한 인도의 외과의사는 자신이 수술을 하는 사람들의 폐의 변화를 발견했다고 한 기사도 있었다. 이전과 비교하여,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들의 폐도 색깔이 상당히 까맣게 변한 상태라며 심각성을 제기하셨다.


나도 인도에 와서 유튜브를 보면서 가장 신기했던 광고 중 하나가 마스크광고였다. 인도에서 유튜브를 보면 인도 광고가 나왔는데, 나에게는 유독 마스크 광고가 자주 보였었다. 사실 이게, 말이 마스크지 거의 방독면 수준이었다.


일기를 쓰는 지금도, 새벽의 안개인지, 차들의 매연인지, 아니면 엄청난 밀도의 미세먼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짙은 구름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도, 뿌옇게 보여 내 시야를 가렸다.


숨을 안 쉬면 죽으니, 그래도 이 공기에 감사라도 하며 들숨날숨을 하긴 하지만, 숨을 쉴 때마다 수명이 깎이는 기분이라 기분이 찜찜하긴 했다. 마스크를 하나 사면되긴 했지만, 안쓰다 쓰려니 정말 귀찮았다.


마스크를 사지 않기 위한 나의 행복회로는 미세먼지의 발생 배경에는 내가 느끼는 모든 현대인의 삶의 편안함이 있다는 결론을 내었다. 그래서 편안함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6. 돈과 기술


인도에서의 나의 모습을 묘사하자면, 인도인들보다 약간 밝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왼손에는 돈을 곽쥐고, 오른손에는 스마트폰을 쥔채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서는 이 두 가지면 문제 없을 거라며 완전히 의지를 하고 있었다. 이 두 가지가 내가 여행을 이어갈 자신감들이었다. 어쩌면 멍청하다고도 할 수 있고, 감사할 줄 모른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둘 만으로, 그래도 큰 문제없이 스스로만의 힘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며 나는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돈만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태와, 기술에만 의지하는 나의 오만, 그리고 이 둘이면 괜찮을 것이라고 다독이는 나의 무지가 여행을 하는 나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있었다.


이미 무언가를 꽉 쥐은 체, 놓지 않는 두 손은 수많은 우연과 보이지 않는 도움들의 가치와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있었다. 이렇게 알고 있긴 했지만, 참 놓기가 힘들다. 버린다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델리의 혼잡한 거리에서, 릭샤왈라가 릭샤를 몰고 마주 오는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듯, 나의 여행도 이런 것임을 알아야한다. 내 손에 쥔 200루피 짜리 지폐와 휴대폰 속 구글 맵스가 계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7. 행복한 왕자


일기를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시간을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구걸하시는 분들도 끊임없이 나에게 눈을 맞춰왔다.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줄 수는 없었다. 내가 만든 어느 때, 누구에게 주어야 하냐는 질문도 형편없었다.


오스카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는 결국 모든 걸 주고 어떻게 되었는가? 행복한 왕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백성들에게 내어주고, 심장만이 남고서여 비로소 행복한 왕자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내가 늘었던 것은 “어떻게 만나지 않을까?”와 “어떻게 주지 않을까?”하는 꼼수 뿐이었다.



8. 어게인 종민씨!


8시 50분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종민씨와 만나기로한 와우까페 근처로 걸어갔다. 근 한 달 만에 오는 빠간 거리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내 쪽이 많이 변해 있었다.


주욱 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멀리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종민씨였다. 약간은 야윈 얼굴, 28일 만에 우리는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다시 만났다. 종민씨는 이제 인도 여행을 마치고, 내일 한국으로 떠난다고 하셨다. 나랑도 우연히 시간이 맞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먼저 간 곳은 델리대학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델리대학에 가면서 그간의 일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종민씨는 길거리 음식이란 음식은 모두 도전하다가 배탈에 많이 걸렸다고 하셨다. 한 번 아픈 뒤로, 이제 아프지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먹었지만, 먹을 때마다 아파서 살이 조금 빠졌다고 하셨다.


나랑 헤어지고 나서는, 바라나시, 우다이푸르, 레 등을 돌아 보셨다면서 내가 그 다음 가야할 바라나시에 대한 정보와, “레”를 강추하셨다. 여행을 재밌게 하신 만큼, 쌓인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금방 델리대학에 도착했다.


9. 델리대학


물론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는 인도의 MIT, 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겠지만, 수도의 이름을 건 델리대학고 무척 좋아보였다.


일단 지하철을 나오자마자 펼쳐지는 풍경도 사뭇 달랐다. 그러지 않아도 낮은 인도의 평균 연령은 이곳에서 더 낮아졌다. 보통 거리를 걷다보면 내 시야에 걸리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을 추산해봤을 때, 30~35세 정도 였지만 이곳은 정말 20~25세였다. 또, 택시가 줄지어 서 있는 것처럼, 릭샤와 사이클릭샤가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역이나 버스를 타고 온 학생들이 그것을 타고 넓은 지하철 안을 이동하였다.


큰 캠퍼스는 학부 별로 나눠져 있었는데, 한 학부의 넓이가 왠만한 대학교 만큼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었다. 안까지 들어가 보고 싶어, 경비원 아저씨에게 말씀을 드리니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처음 들어 갔던 곳은 법과대학 이였다. 시설은 우리나라의 것에 비해 좋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공부하기에 부족한 시설은 아니었다. 2층으로 된 건물은 ‘ㅁ’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중앙에는 정원이 있었다. 몇 학생들은 2층의 난간에 걸려 공부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과의 표지판처럼 보이는 곳에는, 크리스마스에 있는 함피 축제에서 열리는 파티를 홍보하는 포스터도 있었다.


둘 다 대학교는 오랜만이었다. 종민씨는, 대학교에 오는 복학할 생각에 설렌다고 했지만, 나는 딱히 설레지는 않았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HvqCHlBk7wpRNbUqcVk.jpg 델리대학 철학 학부의 건물 내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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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에 정원이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해리포터가 생각이 났다.


10. 알고 갔다면


대학교를 둘러본 뒤, 티벳탄 콜로니로 향했다. 델리에서 코리아타운 같이 티벳인들이 모여 사는 구역이었다. 다람살라와 비슷한 분위기 였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이곳에 온 이유는 종민씨가 저번에 가봤다는 맛집을 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30분을 찾아 해매어도 그 집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에는 입구 쪽의 사람이 가장 많은 식당에 들어갔다.


영업시간이 아니여서, 4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지만 그 시간 동안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부처님의 생애가 남아있는 유적으로 갈 예정이었고, 종민씨는 한국으로 돌아간 뒤, 남미와 몽골을 여행 할 예정이었다.


종민씨도 바라나시에 머물며, 사르나트에 가보셨다고 하셔서, 내가 어땠는지 물어봤지만,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그 장소가 부처님과 관련된 곳이고 그냥 유명해서 가봤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유적지와 관련된 정보를 조금 알려주었다. 조금 공부를 하고 갈 걸 하면서 아쉬워 하셨다.



11. 김종욱 말고 숨은 이야기 찾기


여행지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하고 가야한다, 모르고 가야한다는 논쟁이 있다. 너무 몰라도 좋지 않고 너무 많아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놓치기에는 너무 아쉽다.


오랫동안 남아있는 유적지 밑에는 이야기가 있다. 더구나, 2 천년을 넘게 이어온 유적이라면, 분명히 들어 볼만한 이야기들이 그 아래에 묻혀있다. 마치 지금까지 출판 되는 고전들과 같이 말이다.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고민이 담겨있다. 고민들은 사건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야기가 되어 다가온다. 이 이야기들을 여행자들과 나누고 싶다.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여행은 수평적으로 확장되어 그 시대의 이야기와 닿는다. 나의 이야기와 유적지가 품어온 이야기가 섞일 때, 비로소 질문은 수직으로 뻗는다. 그 접점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종민씨의 이야기를 듣고 이 글을 잘 정리하고 싶다는 다짐이 생겼다. 굳이 인도를 선택하여 오는 여행자들에게 부처님의 생애가 담겨 있는 그곳으로 오도록 꼬실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없는 재주로 쓰려니 겁이 나기도 하지만 감사하며 적어 내려간다.


나도, 만들어질 글을 보시는 분들도 길 위에서, 답이 아닌 질문을 찾을 수 있도록.


12. 다시, 안녕!


식사를 한 후, 다시 빠간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직 기차 시간까지 5시간 정도가 남아있었고, 종민씨는 미프를 통해 만난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종민씨에게 맡겨 놓은 가방을 받고, 종민씨와 다시 헤어졌다.


까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카오톡 단체 채딩방에 저녁에 나자무딘 역으로 가시는 분이 있는지 메시지를 올려보았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지만, “훈”이라는 분이 나자무딘역으로 가신다고 하셔서 동행을 하기로 하였다.


훈님이 올라로 택시를 불러주셨는데, 나는 올라택시를 타는 것이 처음이어서 정말 신기했다. 가격도 둘~셋이 탄다면 릭샤보다 훨씬 싸고, 안전해 보였다. 무엇보다 흥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훈님은 델리에서 일주일 정도를 보내시고, 우다이푸르(?)로 떠나신다는 것 같았다. 이번에 기차를 처음 타셔서, 약간 긴장을 하고 계셨다. 내가 처음 기차를 타던 때 모습 같았다.


7시 반에 출발하는 훈님의 기차는 먼저 도착해 있었지만, 그 기차가 맞는지 모르고, 7시 20분 정도가 되어서 기차에 탈 수 있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13. 기다림은 동영상으로, 순간은 사진으로


내 기차는 아홉 시 출발이였다. 아직 한 시간 반 정도가 남아 있었다. 바닥에 앉아 기다리면서 드디어 포기했던 액션캠을 써볼 생각이 들었다.


아우랑가바드 석굴에서 처음 사용하고, 사진기와 동시 사용이 너무 불편하여 포기했었던 액션캠이었다. 보팔행 기차를 기다리면서, 이것 저것 뒤적이다 다시 액션캠을 들었는데, 짐으로 들고다니기에는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여행에 새로운 기록법을 만들었다.


첫째 유적지를 돌러볼 떄는 내가 움직이면서, 정지해 있는 유적을 사진기로 남기자.


둘 째 , 내가 움직이지 않는 기다리는 시간에는 액션캠을 이용해 움직이는 풍경이나 사람들을 기록하자.


사진은 원래 찍던대로 찍기로 했고, 동영상의 경우 60초 단위로 기록하기로 했다. 동영상과 사진은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점이 많았다. 가장 큰 것은 소리였다. 특히 인도에서는 주변 소음이 재미있었다.


“기다림은 동영상으로, 순간은 사진으로”


뭔가 있어보였다. 실제로 나의 시선과도 거의 비슷했다. 유적지에서는 사진기처럼 움직였고, 기다려야 하는 곳에서는 소리와 움직이는 것들을 담았으니 말이다.


저기에 기차가 오고 있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HvqCHlBk7wpRNbUxDge.jpg 수도인 만큼 델리로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이곳에서는 짐을 전문적으로 날라주시는 분들이 있었다.경쟁과 협상이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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