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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할미 Aug 27. 2024

1000년 된 알베르게에 전기는 없어도 세족식이 있다

순례길 Day 13 Itero del Castillo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가방에 준비해 온 삶은 계란을 아침으로 꺼내먹고, 종종 뒤를 돌아봤다. 순례길은 서쪽에 있는 산티아고를 향하기에, 내내 걷는 방향도 서쪽이다. 그 덕에 오전에는 뜨거운 햇살을 등지며 걸을 수 있어 한결 수월하다. 대신 멋들어진 일출을 까먹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훌쩍 올라와있기도 하다. 그래서 빛이 조금씩 밝지는 것이 느껴지면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한 가지 색인 순간이 없는 그 일출은 돌아보는 순간마다 정말 아름답다.

드넓은 평원에 쏙 감기듯 오목한 지형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아! 프랑스길은 경사도 내리막길이 먼저라니! 같은 나라에서 고작 2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내려왔을 뿐인데, 지형이 이리도 달라진다는 것이 참 감탄스러웠다. 펄럭이는 스페인 국기 아래에서 만족스러운 크로와상을 먹으며 프랑스길에 온 것을 실감했다. 

영화 1917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곳이었다. 높은 건물벽은 부서진 듯 건재한 듯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강렬한 햇빛은 벽 사이에서 진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된 커피코너에서 작은 동전을 기부하고 따뜻한 커피를 한잔 따랐다. 쓰고 맛없는 그 커피가 꽤 마음에 들었을 정도로 그 공간은 정말 멋졌다.

다시 걷는 길 내내 나는 저 먼 곳이 과연 얼마나 먼 곳일지 생각했다. 핸드폰에 나와있는 가시거리는 무려 27KM. 내 평생 정말 본 적 없는 지평선이 360도로 펼쳐져있는 이 광경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어떻게 기억될지 정말 궁금하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외딴 평원에 딱 한채 있는 건물이었다. 정말 ‘외딴’ 그 자체인 곳. 이 건물은 1000년 전에 지어져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어떤 시간들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주 잘 관리된 덕에 이렇게 딱 8명을 위한 알베르게로 사용되고 있었다. 주인인 이탈리아 부부는 이곳을 기부제 알베르게로 운영하며 아침과 저녁을 매일 챙기는 것 같았다.

저녁시간이 되자 주인장 부부는 순례자들을 불러 모았다. 신실해 보이는 망토를 두른 그들은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세족식을 준비했다. 세족식이라니?!! 잘 알지는 못하지만 굉장히... 엄청나게 신실한 순간에 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우연하게도 순례객들이 대부분 이탈리아인이라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이탈리아어로 이어졌지만, 그 전통과 이유에 가볍지 않은 그들의 믿음이 묻어났다. 소박한 양동이가 순례자의 앞에 놓였고, 주인장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물을 뿌린 순례자의 발을 정성스럽게 닦은 뒤, 가볍게 발등 위에 키스해 주었다. 오늘의 순례자 8명에게 차례로 세족식의 순서가 돌아가는 동안 그들의 기도는 참 정성스러웠다. 무교인 데다가 가톨릭의 역사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시피 한 나는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그리고 영광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몰랐고, 어떤 믿음이 이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했을까, 생각한 참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세족식이 끝나고 이어진 저녁식사로 이탈리아 부부와 함께 온 오늘의 특별 손님(?)이 이탈리아식 까르보나라를 만들어주셨다. 이탈리아 사람들 속에 뒤섞여 음식을 먹다 보니, “후추를 뿌려야 진짜 까르보나라다”와 같이 자부심 섞인 이야기들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영어를 꽤 유창하게 하는 베로니아는 내내 순례자들의 대화를 나에게 영어로 번역을 해주었다. 짧은 대화였음에도 나는 그녀의 명민함이 매 문장마다 녹아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와 나눈 대화가 지극히 평범했음에도 그녀는 명백히 지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내가 느끼는 그녀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내가 어떤 모습의 사람으로 비칠지 궁금했다. 왠지 모르게 나이에 대한 대화에서 그녀의 나이만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아무튼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기다란 곱슬머리의 마리아는 산티아고에 산다고 했다. 유일하게 비이탈리아인인 그녀는 스페인어와 비슷한 몇몇 단어를 캐치할 수 있다고 했지만 ‘스페인 속의 작은 이탈리아’에 와있는 이 상황을 함께 즐거워해 주었다. 밝은 그녀만큼 그녀와 나눈 밝은 대화들이 참 좋았다.  

닮은 얼굴의 이탈리아 여사님 두 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종 등장하는 그 따뜻한 어머니의 눈빛을 보내주셨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샤워실에서 나는 양쪽의 칸의 여사님들이 '맘마미아!'를 외치는 것을 들었다. 그 듣기만 했던 그 감탄사를 실제로 들으니 너무 반가웠던 걸까, 이국적임에도 친근함이 느껴졌다. 

다양한 이탈리아 사람들과 함께한 저녁에 그들은 내게 왜 순례길을 걷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왜 그리 많은 한국인들이 순례길을 걷기를 택하는지도 물었다. 많은 유럽국가의 순례자들이 어떻게 그 먼 한국에서 그리도 많은 순례자들이 오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여러 번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대답을 해오던 나는 이제 어느 정도 항목으로 정리되어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답의 끝은 결국 한국의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와 저출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아무도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점들이 그 극성스러움에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내 나름의 생각들이었다. 모두들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의도치 않게 또 통역의 역할을 하게 된 베로니아가 여사님들께도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식사를 마친 뒤 단맛이 강하게 나는 술을 한잔 더 마시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항상 일찍 잠자리에 들곤 하지만, 이곳은 아주 특별하게도 일찍 잠에 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기가 없기 때문이다!!!

저녁식사 시간부터 테이블에는 양초가 켜져 있었고, 9시 반이 지나자 완전히 어두워졌다. 촛불에 의지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주 어릴 적, 정전 때문에 황급히 촛불을 찾아야 했던 기억 이후에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순례길을 걷지 않았다면 정말 해보지 못했을 특별한 순간이 또 하나 지나갔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밝은 달과 함께했다. 지평선에 가까이 있는 그 달은 참 크고 동그랬다. 아침에 본 달은 거의 붉은색에 가까웠고, 걷는 길을 비추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상하고 신비로운 기분이었는데, 그게 정확히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왠지 모를 …”이런 관찰자 시점의 말이 떠올랐다. 어디엔가 있는 스피커에서 일몬도 음악이 나온다. 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이 참 감동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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