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Day 19 Leon
이틀 간 한 알베르게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슈퍼도 없는 마을의 알베르게는 1박 요금이 무려 5유로임에도 불구하고 순례길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 때문에 순례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었다. 덕분에 체크아웃 없이 충분히 늦잠을 자며 연박을 할 수 있었고, 미루어두었던 외투 빨래도 세탁기로 시원하게 해치울 수 있었다. 한달 내내 가득 차 있던 나의 운동앱에는 오랜만에 아주 적은 수의 운동량이 기록되었다. 종종 이렇게 쉬어가는 날들이 순례길을 계속할 큰 에너지가 되어준다. 두 밤을 자고 난 아침, 오래 쉬었으니 더 멀리 가보기 위해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식당과 음식을 결정하는 것에 중요한 기준은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는 종종 사람이 결정하기도 한다. 지나는 작은 마을에서 발견한 츄러스 트럭이 그랬다. 이른 아침 열리는 작은 장에서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한 듯 보였고, 사장님은 절도있는 동작으로 주변 기기를 셋팅하고 있었다. 트럭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그는 추로스 한조각씩을 잘라 손에 쥐어주었다. 요란스러운 영업은 없었지만 그의 자신있는 눈빛으로 충분했다. 당연하게도 츄러스는 참 맛있었고, 그의 에너지는 내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도시로 가는 길은 참 다르다. 걷는 길에 공장과 창고가 보이기 시작하고, 커다란 상업 간판이 눈에 띄면 도시가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걸 한발 한발 걸으며 느낀다는 것은 참 단순하고도 귀한 경험이다.
푹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날은 유독 피로가 더 몰려왔다. 이온음료 큰병을 시원하게 들이마시며 공원 벤치에서의 여유도 부려봤지만, 도시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슈퍼에서 산 음식을 간단히 구워먹고 최소한의 산책을 위해 겨우 길을 나섰다. 높은 건물들과 북적이는 상점에 여전히 흥미는 없었지만 맥주는 마셔야 했기에(?) 테이블에 앉았다. 덕분에 낯설고도 익숙한 호출벨을 보고 놀라는 경험도 남겼다.
그렇게 이 날은 참 많이 걸었다. 핸드폰 속 걸음 수를 보니 무려 5만 3천보…! 지칠 수 밖에 없었던 고단한 하루가 나름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음미할 여유도 없이 잠에 들었다. 지치면 뭐 어쩌겠는가, 일찍 잠에 들면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