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Day 16 Sahagun
빛이 밝기 전에 출발한 만큼, 오늘은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제법 많은 거리를 걸었다. 이제는 걷는 것에 익숙해진 듯하다는 감각도 들었다. 걷는 것을 즐기지 않았던 내게 한 발자국씩 천천히 걸어 나가는 것은 여전히 참 낯설고 신선한 감각이지만, 이제는 제법 적응해 가는 듯하다.
걷다가 만난 첫 번째 마을에서 카페 콘 레체를 한잔 마시고, 끝도 없이 펼쳐지는 해바라기 밭에 감탄하다 그렇게 길을 걷는 시간이었다.
오늘의 마을은 조금 규모가 느껴진다. 잘은 몰라도 마을의 입구부터 기찻길을 보다니, 여기는 큰 마을이 틀림없다.
인상 깊은 알베르게였다. 나무로 된 십자가 목걸이를 한 신부님이 순례자들을 맞이해 주었고, 수도원으로 쓰였을 법한 커다란 건물은 모든 시설이 편리했다. 한국말로 적힌 안내 종이를 보여주며 건물 곳곳을 직접 안내해 주신 신부님의 모습에서 여유로움과 친절함이 느껴졌다.
근처 마트에서 사 온 음식들로 풍족한 점심을 먹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저렴한 마트 물가를 적극 활용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혹은 매우 비싼 스페인의 재료들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 같아 신기하고 감사한 시간들이다.
5시에 시작된 순례자들 간의 대화 시간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사람과 함께했다. 스페인어까지 4개 국어를 하는 신부님께서 각각의 대화 간에 번역을 덧붙여주시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나는 다른 종교보다 유독 천주교의 신부님들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신실함과 무거움을 느끼곤 했다. 아마 다큐 3일에서 봤던 ‘사제 서품식‘ 영상의 영향이지 않았나 싶다.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청춘들‘이라는 부제가 달려있었을 만큼 그 영상에서 다루어진 신부님과 그 가족들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고, 내 기억에서 잊힐 수 없었다. 종교에 무지한 나이기에 얕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신부’가 되는 그 결정의 무게를 감히 헤아려볼 수는 없지만, 그 영상을 본 이후로 신부님들을 내내 존경해 왔다. 게다가 신부님을 평소에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이번에 만난 폴은 내게 더 특별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여러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각각의 이야기에 다리가 되어주시는 그 모습은 그가 보내왔을 시간들이 묻어나 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로호는 이 길을 걷는 것을 내내 환한 얼굴로 이야기했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이 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는 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별똥별에 비유했다. 자신의 삶에서 순간 반짝 빛나며 스쳐 지나가는 그 아름다운 것. 갑작스레 만난 그의 문학적인 표현이 참 감동적이었다.
프랑스에서 온 베네딕트는 아버지의 일로 힘든 일을 겪었고, 대신 그 덕에 만나게 된 파트너가 자신을 이 길로 인도해 주었다고 했다. 역시 인생은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도, 그 흐름에는 결국 행운도 함께 온다는 그 교훈이 그녀의 이 길에 녹아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환기시키는 시간이었다. 일을 하는 것과 걷는 것, Walking과 Working이 나에게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말한 나의 대답은 그냥 그 순간에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었지만, 마치 내가 내내 생각하던 것을 정리해 주는 느낌이었다. 걷는 것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이며 땅만 보며 시간을 보내게 되기도 하는 나름의 고단함이 있지만, 종종 활기차면서도 느리게 주변의 것들을 둘러보게 한다. 기대하지 못했던 풍경에 놀라고 우연한 만남에 흥미롭기도 하다. 그 모든 것들을 조금 더 즐기게 되는 것은 나의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불평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언제든 무엇이든 불평할 수 있다. 발이 아프고, 햇살이 뜨겁고, 목적지가 아직 멀었다 따위의 이유는 차고 넘친다. 걷는 내내 행복해할 수 있는 순간을 찾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모든 건 내 선택이다.
이렇게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은 종종 참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