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Day 20 San Martine del Camino
이른 아침 레온에서 길을 나섰다. 많은 순례자들이 연박을 하며 머물러가는 큰 도시이지만 나는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에, 지나가는 길에 도시의 풍경을 잠깐 감상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가우디가 지었다는 건물도 잠깐 감상하고 바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일출의 풍경은 일몰의 것들과 종종 닮아있을 때가 있다. 유독 더 힘차 보이는 것은 단순히 내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유독 일출을 자주 보는 요즘이 마음에 든다.
산티아고까지 300KM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참 빠르다.
오랜만에 보는 해바라기밭은 여전히 경이로웠고, 뜨거운 햇살에 나무가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평범한 나무가 너무나 특별하게 보일 때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한국인들의 후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역시 입구부터 라면을 팔고 있었고, 게시판 한편에는 한국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동네의 유일한 슈퍼에 들렀다. 순례자들에게 유용한 물건들을 아주 야무지게 진열해 놓은 모습을 보니, 주인의 꼼꼼함과 배려심이 돋보였다. 여러 물건들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계산대 앞에서 멈추었다. 하몽이 들어간 파이 같아 보였다.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그것…! 역시 새로운 것들이 항상 흥미롭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나는 주인아저씨의 응원을 받으며 적지 않은 양을 구매했다. 아쉽게도 하몽 파이(?)의 맛은 너무 생소해서 모두 먹기에 쉽지 않았지만 단돈 6유로에 스페인을 더 깊게 여행한 것 같아 행복했다.
슈퍼에 들어섰을 때부터 밝은 미소로 손님들을 반기던 사장님은 내내 설명할 수 없이 환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그는 이가 환히 드러나도록 자주 웃었고, 그 미소는 마치 소년 같았다. 그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했고, 모든 물건들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슈퍼 앞에서 구매한 물건들을 먹고 있던 순간에 그가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환한 얼굴의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동네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오토바이로 그리는 곡선이 정말 머리에 계속 맴돌정도로 귀여웠다. 나는 한 번도 이런 40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매일 보며 그 에너지를 배우고 싶었다. 그런 사람들을 이곳 순례길에서는 유독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