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Day 21 Astroga
며칠 째 아침의 노을을 이렇게 맞이하고 있다. 자연은 참 질리지가 않는다. 멋진 건물, 섬세한 그림, 대단한 유적을 아무리 많이 봐도 자연이 가장 좋은 것은 아마 그 지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바닥을 보며 지나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많은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 가득한 양들의 모습이 어색했다.
딱 커피가 마시고 싶어질 즈음에 마을이 나타났다. 언제 지어졌는지 모르겠는 고풍스러운 다리를 건너가며 강에 비친 구름을 봤다. 스물한 살 때였을까, 제주도를 혼자 여행하며 이런 사진을 잔뜩 찍었던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순례자들이 많이 앉아있는 카페를 지나서 구글맵을 따라 마을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내가 찾은 곳은 동네 주민분들이 가득한 곳이었고, 덕분에 귀여운 멍멍뷰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도토리를 유독 많이 본 날이었다. 오르막길 내내 가로수로 도토리나무가 있었다. 머리가 좀 크고 몸통이 작은 것도 있었고, 보통의 것들보다 몸통이 더 길쭉한 것도 있었다. 길가의 이런저런 것들을 보고 호기심을 갖는 것, 천천히 걸어가는 여행이다.
저 멀리 아스트로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다다랐다. 기념 탑이 보여 인증샷을 찍고, 지나가는 다른 순례객에게도 사진을 찍어주었다. 가로로, 세로로, 광각으로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버전으로 사진을 여러장 찍는다. 누군가 낯선 이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것은 호주에서부터 나의 소소한 행복 포인트이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덴마크에서 온 봉사자님이 엘레강스한 영어로 건물 구석구석을 설명해 주었다. 7유로 밖에 되지 않는 이 알베르게의 뷰는 입이 벌어질만큼 놀라웠다. 탁트인 시야에 조화로운 건물과 자연이 계속 시선을 머물게 했다. 올라오는 길이 가팔랐던 만큼 보상받는 시간이었다. 순례길 여행은 이런 풍경을 일상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맞이하게 한다.
오랜만에 큰 도시에 온 만큼 저녁으로 아시안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 간장을 사고, 통신사 대리점에 들러 새로운 유심칩을 구매했다. 여권도 까먹지 않고 가져갔으며, 직원도 친절하게 모든 세팅을 해주었고, 아시안 소스까지 산 아주 행운 가득한 나들이었다. 한 순간순간 작은 행운을 맞이할 때마다 크게 기뻐해보는 습관을 들여가는 중이다.
아스트로가의 건물들도 정말 아름다웠다. 이제는 이런 풍경들이 조금씩 적응되는 듯 하지만, 볼 때마다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놀라운 뷰의 테라스에서 무려 볶음쌀국수를 먹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국수가 주는 특유의(?) 감동을 종종 느낀다. 심지어 이렇게 멋진 뷰에서 가슴을 울리는 아시안 누들이라니! 요즘은 이렇게 매일이 알캉스다.
저녁을 먹고 일몰에 맞추어 주변을 산책했다. 참 아름다운 도시였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 긴 성벽이 이어졌는데, 그 벽을 따라 마치 기다란 벤치처럼 적당한 높이의 돌 난간이 이어졌고, 잠시 앉아 노을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참 그림같이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202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