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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Oct 10. 2022

계획 이상의 계획, 섭리.

계획에 없던 1박 2일의 MT에서 발견하다. 

10월 8일 토요일, 이른 아침에 문자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통화에서 사라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한다. 1박 2일 일정으로 남양주의 수동에 가자는 것이었다. 다소 당황스러웠다. 사라와는 2020년부터 코칭을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서 몇 번 만났다. 온라인과 전화 통화로만 교제하던 사라를 대면으로 처음 만난 것이 불과 한 달도 안 되었다. 아직은 우리가 1박 2일의 시간을 함께 보낼 정도의 친분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사라가 함께 가자고 한 곳은 최근 사라가 예배드리는 교회의 대학생과 중, 고등학생들의 조촐한 MT였다. 그들에게 '코치'가 필요할지 모른다며, 내가 얼마 전에 말했던 사회적 기여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며 나를 초대한다고 했다. 뜬금없는 이런 초대가 어이없기도 하고, 대뜸 휴일 아침부터 연락해 '일단 던지고 본다'는 정신으로 '툭'하고 내뱉는 그녀가 신기했다. 거절에 전혀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그녀의 배짱이 부러웠다.   


그녀에게 약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배가 고팠다. 그릇된 결정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 배를 채워야 했다. 이런 느닷없는 일에는 분명 뭔가 숨어있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살면서 많이 겪었다. 더군다나, 나는 외박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낯선 이들과 2일을 꼬박 붙어 있어야 하는 상황은 더더욱 달갑지 않다. 설령, '안 갈래요'로 답할게 되더라도 지금 바로 결정하는 것은 안 될 것 같았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딱 10분 정도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가장 집중해서 살핀 것은 '거부감'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무작정 가야겠다는 느낌마저 강하게 들었다. 바로 월요일 일정을 취소하고 사라에게 문자를 보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앙인으로서는 자신 없지만, 코치로서 함께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가을 즐긴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려고요."  


가볍게 툭 던진 것 같은 자리였는데,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는 가볍지 않았다. 몇 년간 잊고 살았던 '섭리'를 기억하게 되었다. 섭리는 그 어떤 계획보다도 정확하고 치밀하게 디자인된 모양으로 펼쳐진다. 내 뜻을 내려놓고 '부르심'에 응답할 때, 비계획 내지는 무계획적으로 보인 것들에서 섬세한 계획을 경험할 수 있다. 바로 갑작스러운 MT가 계획 이상의 계획이었던 듯하다. 


사라의 말이 맞았다. 나를 이 MT로 부른 것은 누군가의 필요였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걱정하며, 자신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지, 특히 어떤 '業'을 찾아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두 친구를 만났다. 학부 전공과 다른 분야에 취업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던 친구, 소위 말해 현재 '잘 나가는 분야'의 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교 1학년 새내기. 


서로 안면식이 없어 어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대화를 깊이 나누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지금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있어 가능했던 것 같다. 하나는 그들이 깊은 내면의 욕구를 순수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공유한 것, 다른 하나는 그들의 욕구를 경청하고 진심으로 돕고 싶다는 내 마음으로 그들의 욕구와 목표를 깊이 살펴본 것이다. 


코칭 대화를 종료할 때의 표정은 시작할 때의 표정과 확연히 달랐다. 목표가 있는 이들이 그렇듯, 가야 할 방향을 아는 이들이 그렇듯, 자신감과 희망이 그들의 얼굴에 내비쳐졌다. 다른 이로부터 진로에 대해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다는 그들의 고백을 전해 들었다. 무계획적으로 계획된 나의 이틀은 이 두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럼, 됐지,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었음 된 거지."


휴일 이른 오전부터 카페를 연 젊은 사장님 덕에 짙은 향의 따뜻한 라테를 마셨다. 여느 휴일이었다면 9시에 문을 연다는 데, 그날따라 영업을 일찍 시작했단다. 그 사장님은 알았을까? 계획하지 않은 이른 일과의 시작이 나와 사라에게 큰 기쁨이었다는 것을! 


두 명의 20대 청년, 그리고 따뜻한 라테.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필요한 것이 다른 누군가가 부지불식 간의 행동과 일에 의해 채워진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계획인 듯 보이나 절대자의 완전한 계획이다. 


섭리를 다시 내 삶에 들였다. 내일은 또 어떤 계획이 준비되어 있을까? 내일부터 펼쳐질 삶에 기대 한 꼬집 추가한다. 간이 잘 되어 맛있을 삶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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