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지 않고도 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아쉬움은 없었을 텐데.
아버지는 전역하던 해, 나는 고 3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가 그때의 아버지 나이이다. 아버지는 근 30년을 국방부라는 절대 쓰러지지 않을 큰 울타리를 배경으로 일했다. 주어진 일에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었다. 그러나 세상살이에 밝거나 두루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인 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민간인이 되는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았던 듯하다. 조직이 곧 '나'는 아닌데, 조직 밖으로 나가면 광야 같은 세상에 덩그러니 '나'만 남는데.
기억은 조작된 것이다. 내가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자신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역하던 해의 아버지는 내가 이전에 기억하던 그런 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꽤 긴 날들 동안 아버지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날 때부터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리 늦게 잠이 들어도 늘 정확하게 꼭두새벽에 기상했던 분이 마치 그간 못 잔 잠을 자는 듯 자고, 또 자고, 또 자고. 고 3 때의 아버지는 무기력해 보였다.
"그때 어떠셨어요? 조직 밖의 삶이 두려우셨어요? 불안하셨어요? 조직 밖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마주하기 어려우셨어요? 아무것도 없는 데 가장으로 역할할 것에 숨이 막히셨어요?"
고3 때의 기억에 남은 아버지 처럼 되지 말자 생각했다. 절대 조직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을 것. 조직 밖으로 나갈 때 '나는 내가 스스로 먹여 살릴 거야!'라며 미련 없이 당당하게 나갈 것. 아무 소속이나 배경 없이도 주눅 들지 말고 '나답게' 살 것. 다짐에 다짐을 했다. 내가 내세울 뭔가를 열심히 만들어간다 생각했다.
그러나 아닌가 보다.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조직 밖에 나오니 아버지의 마음이 짐작된다. 아버지께 물을 질문들에 내가 답하면서 이해가 깊어진다. 아버지가 느꼈을 기분과 잠겼을 생각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지금 내 마음을 같이 나누고 싶은데, 그때 아버지를 오해해 죄송하다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경험하지 않고도 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아쉬움은 없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