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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회복한 일상은 무엇인가요?

나의 일상은 바오 패밀리.

by 무소의뿔

작년 12월 3일은 내가 미국 여행을 시작한 지 5일이 되는 날이었다. 시차가 어느 정도 적응되어 장시간 운전이 가능하다 싶었다. 마음의 고향 State College로 이동하는 것에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던,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 아침, 유튜브에서 속보라며 영상 하나가 떴다. 비상계엄선포.

온몸이 떨렸다. 늦은 밤의 한국, 잠자고 있을 동생에게 급히 문자를 보냈다.

"비상계엄선포, 이거 사실이야?"


비상계엄선포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는데, 내 자유로운 상상력은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전쟁을 상상했다 보다. 미래의 나는, 가족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고 불법 체류자가 되어 서럽고 애달프게 울고 있다. 순간 슬픔이 확 몰려왔다. 무서웠다.


동생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그냥 있어. 환율이 1430원이네. 잠이나 잘란다."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은 멈췄다. 아니 정확하게는 소소하게 즐기던 일상의 재미를 끊었다. 매일 같이 나의 하루와 함께 했던 소소한 일상은 '바오 패밀리'였다. 매일같이 마음으로 함께 했던 아이바오의 쌍둥 바오들, 알콩달콩 귀엽게 잘 자라는 이 아이들을 찾지 않았다.


가족들과 못 만날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그러나 이번 여행 또한 일생에 다시없을 기회임을 잊지 않고 계획한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 마음은 늘 한국과 가족을 향하고, 귀와 눈은 거의 24시간 유튜브에 머물며, 한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2월 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전히 긴장감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바오 패밀리를 보지 못했다.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차마 손이 가지 않았다.


6월 3일 대통령선거, 4일 당선자 발표, 그리고 6월 5일이 되었다.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긴장이 확 풀리면서 울음이 터졌다. "이제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밥을 먹다 말고 엉엉 울며 나에게 이렇게 말해 줬다. 그제야 나는 안전하다 느꼈다. 지난 날들 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며 지냈었는지, 얼마나 긴장하고 두려워했었는지. 그렇게 눈물을 왈칵 쏟으며 독백으로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막막하고 암담했던 시간을 보낸 후 많은 이들이 느꼈을 안도감, 나도 절절하게 느꼈다.


기적 같았다. 그렇게도 손이 가지 않더니, 6월 5일 이후 나는 다시 바오들의 영상을 보고 있다. 꼬물꼬물하던 쌍둥바오들이 이제는 다 커서 독립 훈련 중이다. 귀여운 장면들을 못 본 것은 아쉬우나, 이들을 다시 보는 소소한 일상을 회복해 감사하다. 소소함을 누리는 삶이 이렇게나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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