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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Jan 15. 2024

괄호와 겁쟁이

오늘은 뭘 쓸까 생각하며 지난 글들을 쭉 살핀다. 급하게 쓰고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글들이 가끔 부끄럽지만 딱히 고칠 생각은 없다. 그땐 그랬나 봐, 하고 만다. 하지만 오늘은 옛 글들 속 괄호들이 유독 눈에 거슬린다. 혼잣말의 찌꺼기들이 괄호 안에 남아있다. 퇴고 과정에서 뺀다고 뺐는데도 없어도 됐을 문장들이 많다.


내 경우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A라는 걸 알지만, 그 이야기를 쓰다 떠오르는 A'나 B를 그냥 버리기 힘들 때 그 문장들을 괄호나 각주 속에 가둔다. 때론 변명이, 때론 정확히 밝혀두고 싶은 사실 관계가, 때론 핵심 주제와 관련 없지만 그냥 던지고 싶은 농담이나 시답잖은 수다가 그 안에 있다.


"이야기를 말할 때, 감독은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중요한 것을 강조한다"
 - 알렉산더 맥켄드린, <영화수업> - 


영화 연출에 관한 책을 읽다 최근 밑줄을 친 문장인데, 글쓰기의 본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까 제발 딴 길로 새지 말라는 거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일까? 산만한 성격이 글에도 투영되는 걸까? 의외로 겁이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지난 글들에서 하나의 문장을 확신을 갖고 말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괄호 뒤에 숨는 나를 발견한다. 적절한 순간 멋지게 쓰인 괄호가 가질 수 있는 위트는 대체로 얻지 못한 채, 주렁주렁 불필요한 문장들을 방패 삼아 달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온라인 세상 속에서라도 담백한 사람이고 싶은데 역시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실은 달고 싶은 괄호가 한 두 개가 아니었지만 참아냈다. 글 안에 성격이 담긴다면, 좀 더 단순하고 용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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