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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Feb 05. 2024

즐거운 고민이 시작됐다

휴가를 맞이하는 마음

휴가가 다가오고 있다. 즐거운 고민이 시작됐다. 이번 휴가엔 어디로 떠나볼까? 매 시즌 롤러코스터를 타는 직업 만족도 그래프가 이맘때면 빠른 속도로 우상향을 그리는 이유는, 한 작품이 끝나면 비교적 긴 휴가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모든 고난과 번민을 잠시 잊고, 우민화 정책에 넘어가버린 사람처럼 조금 얼빠진 채로 하지만 신나게 휴가 생각만 한다. 바라는 것은 그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긴 여행. 일터에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좋았던 휴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대만, 발리, 시드니, 뉴욕, 일본, 독일 등 상상 속에서 온갖 세계여행을 마친 끝에 잠정 결정된 이번 휴가지는 태국 피피섬과 그리스이다. 휴가까지는 한 달 남짓 남았고 아직 아무것도 예약하지는 못했으니 그 사이 어떤 변수를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그렇다. 3월의 한국보다 조금 따뜻한 낯선 나라에서 햇빛을 받으며 바다를 보고 대낮부터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상상만으로도 빠르고 확실하게 행복해진다.


여행은 뭘까?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쓰게 되는 일이니 자꾸만 자문하게 된다. 이전에도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휴가가 끝난 뒤라 그런가 마냥 기대감에 넘치는 지금보다 어쩐지 조금 울적한 마음으로 쓴 글이었지만. 


여행은 때론 유행이기도, 값비싼 취미이기도, 남다른 콘텐츠이기도 하다. 대학생 때는 그저 새로운 경험이라 좋았다. 세상이 넓구나,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르게 살아가고 있구나, 새삼 그런 것들을 느끼는 시간을 보내면 내 외연이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낯선 것들을 보다 보면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낯선 생각들이 튀어나와 신기했다. 책에서만 보던 것들을 내 안에 차곡차곡 채워 넣다 보면 조금은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모르는 것도 계속계속 보다 보면 뭔가 알게 될 거라는 생각에 발이 아프도록 걷고 보고 다녔다. 


지금의 나에게 여행은 아무래도 과몰입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1/24초 프레임 단위로 영상을 자르고 붙이고 쳐다보다 보면 그 몇 뼘의 공간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진다.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내 존재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결과물이 좋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신났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기분을 거는 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건 그냥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러나 휴가 때만은 그런 이상한 과몰입을 단칼에 끊어낼 필요가 있다. 


1/24초 단위로 세상을 살지 않아도 된다. 시퀀스 세팅을 다시 한다. 몇 시간 아니 몇 날 며칠을 그저 허비해도 된다. 매일같이 온갖 말들이 오가던 업무용 휴대전화는 숙소에 두고 아무 말 없이 걷고 보기만 해도 된다. 그렇게 좋은 휴가를 잘 보내고 나면 다시 힘내어 조금 더 건강해진 마음으로 달릴 준비가 된다. 이번 휴가도 그런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것만큼은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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