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몸이 안 좋았다. 감기라거나 장염이라거나 뭔가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차라리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았겠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은은하고 자잘한 증상들이 나를 귀찮게 했다. 손발이 차고 두통이 잦고 소화가 안되고, 무엇보다 내내 피로했다.
수액이라도 맞기에는 요새 너무 잘 먹고 잘 자고 있었다.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다. 더 바쁘게 일할 때도 멀쩡했는데 휴가를 앞둔 지금 대체 왜 이런건지 좀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피곤하게 산 빚이 쌓인 거라고 생각하며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체력이 올라오지 않으니 완충이 안되는 전자기기처럼 몸이 쉽게 방전되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만남이 예상보다 길어지면 어김없이 지쳤고, 그 좋아하던 합주도 하기 싫었다. 평소 같으면 휴가를 앞두고 설레하며 이런 저런 것들을 찾아봤을 텐데 출국을 이틀 남긴 지금까지도 사실상 여행 계획이랄 게 없다. 요리도 귀찮아서 집에 있을 때는 자꾸 배달 어플을 켰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은 유명하지만, 다정함 뿐만 아니라 호기심도 활기도 설렘도 그밖의 모든 좋은 감정들도 다 체력에서 온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어제부터 건강 벼락치기를 하듯 홍삼도 먹고 비타민도 먹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서는 오랜만에 요가 매트를 꺼내 스트레칭도 할 것이다. 그렇게 다시 조금씩 체력을 끌어올려서 이번 휴가 때도 많이 감탄하고 많이 궁금해하며 골목골목 누비고 다닐 테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면 정말로 운동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