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는 글 주의
인간관계의 피로함은 대체로 저의를 의심할 때 생긴다. 이 말이 어디까지 진짜일까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다. 뭐든 들리는 그대로 듣자고 매일 다짐하지만, 어딘가 좀 이상한 구석이 보이면 즉각적으로 예민해진다. 일터에서 구십구 명의 좋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한 명의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나면 그전에 열심히 쌓은 마음들이 흔들린다.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도, 절대적으로 이상한 사람도 없다는 걸 안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많은 이들의 생계와 여러 회사의 명운이 얽혀 있는 일이니, 누군가에겐 우선순위가 A이고, 누군가에겐 B이고, 누군가에겐 C인 거다. 우선순위가 A인 사람에게 우선순위가 C인 사람의 행동은 언제나 의아하다. 그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다.
때문에 선의를 의심할 필요가 없는 관계가 주는 확실한 편안함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랑만 있으면 따뜻한 보호막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이 사람이 이 얘기를 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따위를 고민하느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행간을 읽기 위해 비언어적 표현을 애써 살필 필요가 없다. 그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더라도, 그 간극 사이에는 감정이 아니라 현상 그 자체만 있다. 물론 이 단계의 관계로 발전하자면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든다.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구나,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구나, 축적되는 데이터와 오가는 애정이 필요하다.
불신은 확실히 사회적 비용이 드는 감정인 것 같다. 그러니 사회 신뢰도 같은 걸 연구하는 거겠지. 서로의 진짜 마음에 닿기 위해 낭비되는 에너지가 상당하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쉬는 날이면 그냥 혼자 있거나 늘 만나는 몇 사람들만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