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꿀
며칠 전, 호르몬의 농간과 일터에서의 어쩌구를 이유로 힘든 하루를 보냈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닫자마자 곧바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종일 꾹꾹 막아왔던 마음의 빗장이 편안한 공간에 돌아오자마자 풀려버린 것이다. 답답함과 슬픔과 억울함과 미안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구 섞여 몰려오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집에 오자 내 몸은 눈물과는 영 어울리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집에 왔으니 자동 반사처럼 나도 모르게 현관에서 곧장 베란다로 가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가둬뒀던 공기를 풀어주고 새 공기를 들였다. 제대로 울기 전에 일단 맑은 공기는 마셔야지. 창문을 열고 나서는 바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실로 향했다. 렌즈를 빼고 화장을 지우고 씻었다. 눈이 많이 촉촉해진 탓에 렌즈를 빼는 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는 거실로 나와 화분 속 식물들의 잎과 흙마름 상태를 체크했다. 내일쯤에는 홍콩야자에 물을 줘야겠군, 물꽂이한 가지들이 얼른 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아 맞다 나 울던 중이었잖아?
부정적인 감정의 특히 나쁜 점은, 딱지가 생긴 자리를 계속 건드리고 싶듯 나도 모르게 음미하게 된다는 데 있다. 슬퍼. 슬퍼서 슬퍼. 슬퍼서 슬퍼서 슬퍼. 짜증 나. 짜증 나서 짜증 나. 짜증 나서 짜증 나서 짜증 나. 하지만 동시에 나는 혼자 삶을 꾸려가는 생활인. 깔끔한 사람은 못 되지만 아무래도 집에 들어온 이상 이 집을 최소한 내가 몸 눕힐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해야만 한다. 외출에서 돌아온 어른이 응당 해야 할 것들을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연쇄 과정은 멈추고 눈물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역시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이 없는 걸까. 아니, 어쩌면 애초에 그런 감정은 원래 몸을 움직여 눈앞의 일을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쉽사리 희미해질 허상 같은 것이었던가. 어쨌거나 드라마퀸보다는 무던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나에게 이 눈물 실종 사건은 꽤나 흥미로운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