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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Sep 23. 2024

감히 심사를 하며

'내 꿈은 면접관'이라 말하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타인의 말에 맥없이 휘둘리던 취업 준비생 시절, 내게 면접관은 꽤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아야 도달할 수 있는 자리로 느껴졌다. 당시의 나는, 어떤 회사 면접 때는 너무 모범생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회사 면접 때는 딱 봐도 말 안 들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아 어쩌란 말이냐.


그런 식의 단순한 문장들로 정의된 나를 마주하며 어차피 그건 다 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럼에도 그런 말들은 내 안에 오래 남곤 했다. 선택받기 위해 애쓰는 별로 멋지지 않은 스스로를 견디고 설명 들을 길 없는 결과들을 마주하며 나는 자주 아득해지곤 했다.


몇 년 후, 대다수의 면접관은 그냥 차출된 직장인들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권위도 인정도 받은 적 없었지만 회사에 들어간 나도 금방 이런저런 심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 면접관 비슷한 것이 된 건 한 오디션에 들어갔을 때였다. 결정권 지분이 콩알만 한 바지 면접관쯤이었지만, 아무튼 누군가의 간절함을 마주하는 경험은 그저 과분하고 미안한 일이었다. 코앞에서 발발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고 있는 이들을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자세를 바르게 하게 되었다.


이후 합격과 불합격, A와 D 따위를 나누는 일들을 심심찮게 맡곤 했고 여러 가지 업무 중 하나가 되자 처음의 마음은 곧 희미해졌다. 편한 자세로 앉아 마우스를 딸깍이며 그것들을 처리했다.


요즘은 그냥 너무 많은 것이 운이라는 생각뿐이다. 최근 또 한 건의 심사를 했다. 심사 안내 메일을 받아 들고 함께 심사를 하게 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성별도 나이도 취향도 세계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다. 마감 직전의 직전까지 10개를 올릴지 11개를 올릴지 고민하다가 결국 10개를 올렸다. 이후에 심사하게 될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나에겐 10개 또는 11개의 고민이었지만, 그 1개의 주인에게는 합격과 불합격을 나누는 기로였을 걸 생각하면 또 한 번 선택의 무게를 실감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심사했다면 고민의 여지없이 합격시켰을지도 모른다. 정반대의 상황도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 꾹꾹 눌러쓴 마음들이 와닿을 때면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심사하겠다 다짐하지만, 커피의 약발이 떨어질 때쯤 차출된 직장인의 자아는 얼른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그 두 마음 사이를 줄타기하며 심사에 임한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우연과 운들이 쌓이고 쌓여 돌아갈지 상상도 안 간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이런저런 결과들에 수도 없이 흔들리며 밤 잠 설친 나에게도 그냥 그저 다 운이라고, 모든 건 그렇게 다 한 끗 차이였을지 모르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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