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무궁화호에서
23년 6월 19일 월요일.
막냇동생을 보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0일 수요일. 긍정과 부정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서울행 무궁화호에 올라섰다. 오랜만의 쾌쾌한 냄새. 무궁화호 특유의 눅눅함과 오래된 향이 평소엔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오늘따라 막냇동생에게 한 나의 행동이 옳았던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서질 않아 복잡한 상황에서 무궁화호와의 만남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6호차, 제일 끝 칸의 제일 뒷자리. 성심당으로 가득 찼던 두 손을 해방시키고 털썩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세 열 앞에는 자리에 앉지 못하는 한 어르신이 있었다. 보라색 캐리어, 그 위에 수건, 실내화 등 각종 생필품을 노란 박스테이프로 돌돌 감아 캐리어의 몸집을 불린 어르신은 자리 위 선반에 짐을 올리려는 듯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 안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선반은 몸집이 큰 보라색 캐리어를 올리기엔 좁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머리가 샌 어르신은 캐리어를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들어 올리시는 어르신을 보며 왠지 모를 안도를 내쉬었는데. 아니었다. 어르신은 마지막 몇 cm를 올리지 못하고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캐리어 밑으로 정수리를 구겨 넣어 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짐의 무게는 만만찮았다. 그는 또 한 번 팔에 힘을 줬고, 두 번의 시도 만에 짐을 올렸다.
이 모든 것이 30초 만에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 30초를 머뭇거리며 흘려보냈다. 어르신의 팔이 떨리는 것을 목격하고도 도와드릴지 말지 고민만 했다. 사람들이 주목할까 봐, 어르신이 원치 않을까 봐, 내가 들어 올리지 못할까 봐, 선반이 캐리어를 버티지 못해 무너질까 봐. 몹쓸 상상력에 머뭇거렸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
이 일을 무마하기 위해 무궁화호에서 내리자마자 향한 지하철 플랫폼에서 어르신이 오자마자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그걸로 면죄부가 되었니. 속상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