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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나 Jul 14. 2024

중환자실 밖 덩그러니

기다림의 연속

내가 속해있던 중환자실은 5층이었다. 병원 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층수에 위치해 있지만 사람으로 꽉 찬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스로 내려 복도를 조금 걷다 보면 중환자실로 향하는 통제된 입구 앞에 보호자들이 줄줄이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러 중환자실들이 그 문 하나 뒤로 모여있기 때문에 어디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타들어가는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환자에게 물건을 전달해 주기 위해 기다리는 보호자, 면회나 면담시간을 기다리는 보호자. 모두가 가족과의 만남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어느 용건도 없이 환자를 기다리는 분들이었다.



내가 담당했던 환자의 보호자 중 여러 번 뵈어서 얼굴이 익숙했던 분이 있었다. 어느 오후 출근길에 중환자실 앞 복도에 그 보호자 분이 서 계신 걸 발견했었다. 하지만 그날 면회나 면담 같은 방문하실 일정이 없는 걸 알았기에 갸웃하며 지나갔었다.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혹시나 그 사이에 일정이 생겼나, 하고 카덱스(환자의 정보, 일정 및 계획을 적은 기록장)를 열어 확인해 보니 역시나 보호자분이 오실만한 일은 없었다. 그냥 다른 오실 일이 있으셨나 보다 생각했고 별다른 변화도 생기지 않는 걸 보고 퇴근을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출근길에 보니 또 서 계신 게 아닌가? 역시나 오늘도 예정된 일정이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중환자실 입구 옆 투명한 창으로 보이는 복도를 그냥 쳐다보고 계셨다. 복도일 뿐이라 중환자실 내부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눈은 분명 여러 벽 너머 할머니의 침대를 향하는 듯했다. 결국 나는 할아버지께 인사드렸다.


"안녕하세요. 000님 보호자분 아니세요? 여기서 환자분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그제야 할아버지는 날 향해 고개 돌리시곤 대답하셨다.

"아니.. 집에 있으면 걱정되고 답답하기만 해서 왔어. 이렇게라도 봐야지.."



굳게 닫힌 불투명한 문 밖에서 벽들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침상을 쳐다보며 답답한 마음이 나아지긴 하셨을까. 누군가 지나가며 문이 열리고 닫힐 찰나에 침상 자락이라도 보일까 발뒤꿈치를 들어 고개를 연신 돌리고, 병원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코드블루 소리에 놀랐다가, 다시 자신의 가족이 아님을 끝까지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는 그런 시간들의 연속이었을 텐데 집에 있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같이 있던 집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계시면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까? 할머니는 잘 있는가, 혹여 무슨 일이 생겼는데 연락이 늦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라는 생각 속에 결국 집을 나섰을 모습이 그려졌다. 그럼에도 문 밖에 밖에 있을 수 없는 현실적 여건과, 그럼에도 규정 외 면회를 하게 해달라고 한 번도 떼쓰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밖에서 기다렸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또 나를 마음속으로 촉촉해지게 만들었다.



그 길로 들어가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의 마음을 전달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밖에서 계속 응원하고 계세요. 계속 곁에 계시니 힘내서 치료받으시래요!"

할아버지 성격상 이런 표현을 하진 않을 것 같았지만 난 할아버지 마음의 소리를 엿들었으니 그대로 전했다. 천천히 끄덕여 인자한 미소를 보이는 할머니도 안 봐도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대답하셨을 것이다.

"걱정 말아요"



이튿날, 내가 그 환자를 담당하게 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치의가 환자를 만나러 왔을 때 상황 설명을 했다. 때가 코로나 이후로, 감염관리에 극도로 민감한 시기는 지났지만 정규 면회는 사라져 면담이나 위중한 상황일 때만 면회시간이 부여되었고, 그 외의 특수한 때에는 주치의 판단 하에 추가로 진행이 가능했다. 기록을 찾아보니 중환자실에 입실한 지 꽤 되었지만 정기적으로 우리가 먼저 드리는 전화면담만 받으셨었고 다른 보호자분들에 비해 면회는 전무하다시피 있었다. 주치의의 오케이 사인에 따라 들어오시게 된 할아버지는 뚜벅뚜벅 느린 그 걸음만큼 할머니 손을 천천히 잡으셨다. 별 다른 대화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시다가 면회시간이 끝나자 잘 있어, 하고 뒤돌으며 손 흔들었지만 옆에 서 있는 나는 누구보다 그 따뜻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말없이 기다리고 계시는 보호자분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을까 뒤돌아보곤 했다. 문 밖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 마음들이 안쓰러웠고 다 다독일 수는 없지만 모르지는 말자는 다짐을 했다. 내가 돌보고 있는 것이 환자만이 아니라 보호자까지인 것을. 아픈 사람 옆에 더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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