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존버에 대한 어떤 것

다이어터와 알바러   

날씨가 내 기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전히 우중충한 흐린 날을 좋아하긴 하지만, 따스하고 맑은 요즘 대체적으로 컨디션이 좋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면 차분해지는 것이다. 최근 몇 달, 혹은 몇 년간 내 차분의 근원은 우울에서 온 것이었고, 특히 글을 쓰려고 시도할 때 심해지는 경향이 있었기에 다시금 '헤까닥'될까 조금은 걱정된다.


이전까지의 근황은 적을만한 것이 별로 없었는데, 책이나 넷플릭스를 보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성실, 끈기, 근성 등을 간접 체험하는 게 주된 생활이었다.(+그리고 뿌듯해하기) 그러다 최근에 다시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할 일도 없기에 어쩌다가 이렇게 살고 있는지 적어보기로 했다.

가지런한 알바생의 책상.jpg


#다이어트, 존버는 1/3쯤은 승리한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PT 수업을 받고 있는데 지금은 내 돈으로 끊은 수업이고, 시작은 엄마가 끊어놨다가 무릎이 아파 못 간 것을 내가 대신한 것부터였다. 내가 PT를 시작한 이후 엄마가 갑자기 새로운 다이어트 운동으로 복싱(무릎 아픈 사람이 대체 왜....) 수업을 끊고 몇 번 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복싱마저 내게 넘어오는 것?' '내 살을 빼게 하려고 공사친 것?'이라고 살짝 의심했지만, 별 다른 말이 없는 것을 보니 그냥 잊어버리신 듯하다.


여턴간 2달 정도 식이와 운동을 병행하고 나니 10kg이 조금 안 되게 빠진 상태다. 원체 비만휴먼이라 10kg가 빠져도 갈 길이 멀지만 이전보단 몸이 가벼워졌다. 흐릿하게나마 턱선도 보인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게 먹고 그 전보다 많이 움직이니까 살이 빠지는 건 당연한 것인데, 막상 변하니까 신기하다. 덕분에 내 체질은 뽀록 없이 먹은 만큼 찌고 움직인 만큼 빠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 또 모든 성취의 확실한 왕도는 '꾸준히' 뿐이라는 것도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PT를 받으면서 든 생각은 PT의 강점은 운동을 배우는 것에도 있겠지만, 다이어트의 경우엔 ‘관리’ 자체에 있다는 것이었다.  한두 달 정도로 조질 수 있는 몸이 아닐 경우엔 더욱 그렇다. 운동하는 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선 혼자 운동하다 해이해지기 십상이다. 그럴 때 옆에서 '회원님 힘내세욧!' '5초 만 더!' '5개만 더!'라고 옆에서 숫자를 세 주고 격려해주면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어진다.


당연히 식단을 지키는 데 있어서도 아주 도움이 된다. 사실 운동가는 거야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일단은 한다고 해도, 덮어놓고 먹다 보면 어느새 허버허버 한 끼 뚝딱하는 상황은 너무나도 많다(경험담). 이럴 때 먹는 걸 누군가에게 보낸다는 생각 하면 그나마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PT는 내게 정말 도움이 됐다. 처음 시작할 땐 1회 1시간 수업 치고는 비용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든지 내가 운동과 식단에 대해 물어보면 알려주고 또 관리해주는 비용까지 생각하니 그래도.. 그나마.... 납득이 됐다.

채고의 다이어트는 살이 찌지 않는 것이다


물론 혼자서도 강한 의지를 가지고 매우 훌륭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왜 나는 다이어트 의지가 쉽게 무너지는가?'에 대해서 잠깐 고민했는데, 일단 내가 성실하긴 한데 그다지 끈기 있는 편은 아니어서, 특히 장기적으로 꾸준히 천천히 해야 하는 일에 약하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신보다 항상 모의고사가 잘 나온다거나, 장거리 달리기보다 단거리 달리기를 좋아한다거나, 목표가 명확한 프로젝트성 업무를 선호한다거나 하는 그런 면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자신 있는 것과 어려워하는 것이 다르다. 가령 대학생인 내 트레이너는 현재 다이어트 중인데(그래서 요새 수업하는데 본인이 힘이 없다), 다이어트를 위해선 새벽 5시에도 일어나 운동하고 식단도 빡빡하게 지키지만, 토익 점수는 어떻게 해야 잘 받을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토익이나 다이어트나 기본적으론 비슷한데 말이지. 적게 먹고 운동하면 살이 빠지는 것처럼, 단어 많이 외우고 문제 많이 풀어보면 점수는 잘 나온다. 그래서 그냥 자기한테 잘 맞는 분야와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쨌든 존버 하니까 살은 빠졌다. 존버 과정에서 돈의 힘은 내 의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내 돈'과 '다시는'으로 시작하는 생각을 수천 번 정도 함) 것도 확인했다. 결국 나는 '나 같은 인간은 중간에 언제 멘탈이 나갈지 모르니 혼자선 목표치에 도달할 수 없다'라고 결론지었고, 적금을 깨고 추가로 PT를 등록하게 된 것이다.

 

사실 한 개 먹었습니다,,,,,,



#존버와 돈의 뫼비우스 띠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한 번에 적금을 깰 정도의 돈을 쓴 적이 없다. 그래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하지만 그 생각과 별개로 적금을 깨고 나니 생활이 쪼들리기 시작했다. 다이어트 존버를 위해선 생활비 예정이었던 적금을 깼으니,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일을 찾았다. 여전히 이전 직장에서 했던 일을 할 자신은 별로 없는데, 그렇다고 이렇다 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 그 바닥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다만 인턴(알바)이라 업무 강도가 세지 않다. 가슴 깊숙이에선 '30살 인턴'이라는 내 신분이 마냥 자랑스럽진 않고, 급여는 작고 귀여울 뿐이지만, 전체적으로 마음은 편안하다.

  

하지만 부모 마음은 편하지 않다는데.....A ㅏ 못난 캥거루 인생이여!


출근한지는 이제 2주 차 정도다. 이 직장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아주 좋은 조건인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밥을 준다는 것(먹을 일은 없지만 저녁까지)이고 둘째는 칼퇴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비록 출퇴근 시간이 꽤나 걸리긴 하지만 단점을 상쇄할 정도다. 또한, 아직까지는 그다지 어려운 업무가 없어서 시간 날 때마다 잡코리아, 잡플래닛에 들어가고, 개인 공부도 하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까지 쓴다. 호호


밥은 구내식당에서 먹는데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목에 사원증을 걸고 급식을 먹는 것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한 회사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이곳이 대기업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이 알바 외에도 다른 일거리들이 생겼다. 하나는 지난번 퇴사한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해 달라는 제안이었는데, 당시 대표였던 사람이 지금은 물러나(ㅋㅋㅋㅋ) 거절할 이유가 없어 오케이했다. 혼돈이 싫어 퇴사했는데, 혼돈으로 인해 다시 내가 돈 벌 기회를 얻게 됐다. 와우


다른 하나는 두 달 정도 전에 아주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의 시험에서 탈락했는데, 이후 그곳에서 프리랜서로 일거리를 줄 수 있다는 제안이 들어온 건이다. 탈락한 것은 너무나 민망하지만,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에 아주 기쁜 마음으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다만 아직 본격적으로 일이 배정된 것이 아니라 가끔 일을 맡을 정도일 것 같다.


마지막으론 과외. 지인이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는데, 나는 시간 대비 효율 상 학원을 추천했지만 지인의 업무 특성상 학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고 그렇다 보니 내가 과외를 하게 됐다. 아예 기초부터 시작하게 돼서 아주 편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첫 시간에 생각보다 내 혀가 많이 굳어있어서 살짝 반성했다.

과외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중 '내가 아직까진 쓸모가 있군'이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일이다.(항상 고객님께 감사와 충성을)


프리랜서라는 말은 어쩐지 매우 전문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네 가지 일 모두에서 전문과는 조금 멀다는 느낌이다.  계속해서 직장을 알아보고 있으니 그 느낌은 맞다. 사실 여전히 직업으로서의 일을 해내고+출퇴근을 한다는 게 부담스럽고, 그냥 이대로 편안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이대로 존버하다 보면 또 어떻게든 흘러가지 않을까.


#3개월 게임


며칠 전, 친한 친구가 결혼식을 올렸다. 사실 붙어있던 시간은 1년 남짓이지만, 수험 생활할 때 같이 살며 오지게 고생했어서 자주 만나진 않지만 여전히 친하다.


친구에게 청첩장을 받던 날, 나는 븅신같이 친구에게 또다시 뻔하고 우울한 이야기를 해버렸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자기 이야기를 해 주면서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고 3개월 뒤만 생각 해'라고 말했다. 가령 취업이라면, '난 어차피 3개월 뒤엔 어디든 다니고 있을 테니까'라고 무작정 믿어버리면 된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무기력함도 덜해진다는 것.


나는 기본적으로 이리저리 잘 재보는 성격으로, 무기력해지면 걱정거리가 무한대로 커지면서 결국 어느 것도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라는, 때론 눈 앞의 것만 봐도 된다는 말이 아주 와 닿았다.


다이어리를 펴 보니 청첩장을 받은 게 한 달 반 전이었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꽃이 폈고,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나는 아침 일곱시에 출근 버스를 탄다. 내가 움직이는 근육에 신경을 두고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자극을 받는지 느껴야 하는 것처럼, 지금의 생활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존버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모든 게 아득하게 보일 땐 그냥 한 번에 하루만 생각해. 하루도 너무 힘들면 그땐 그냥 한 시간만 생각하고 만약 한 시간도 너무 길게 느껴지면 1분씩만 생각해 봐." -스캄(SKAM) 中

작가의 이전글 쓸쓸한 사람의 통화에 대한 어떤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