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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운 Jun 28. 2024

등대로 가는 길

03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높은 하늘은 밝은 하늘색, 드넓은 바다는 짙은 파란색이었다.


걷기 좋은 선선한 날씨에 어울리는 하얀색 반팔 롱 원피스를 입었다. 아이들은 얇은 긴팔 티셔츠와 긴바지를 입고 있다. 선명한 수평선이 빛나고 파도는 하염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석고 조각상처럼 잘생긴 등대로 가는 길은 좁고 길었기 때문에 바다 한복판을 걷는 것처럼 신비로웠다.


오른손에는 첫째 아이, 왼손에는 둘째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걸었다. 낯선 공간에 설렘과 긴장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그때 가까운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 보였다. 바다 색깔보다 진하고 매끈한 피부를 가진 돌고래 한 마리.


바다에서 돌고래를 만나다니 놀랍고 반가워서 두 손으로 벌어진 입을 가렸다. 손을 놓은 틈에 첫째 아이는 돌고래를 만나러 가겠다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얼마 안 가 허우적거렸고 아이를 구하러 나도 따라 들어갔다. 아이를 건져 놓고 보니 이번에는 둘째 아이가 돌고래를 만나러 간다며 입수했다. <이제 물에 들어가면 안 돼> 첫째 아이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하고 다시 바다에 들어가 둘째 아이를 구해냈다.


아이 둘을 뭍에 올려 보내고 정작 나는 힘이 없어 올라오지 못하고 등대 주변 돌멩이를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었다. 하얀 햇볕 아래에서 축축하게 젖은 아이들은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이네, 입 밖으로 말이 되어 나오지는 못 했다.


지금 나를 도와줄 사람, 남편. 그는 함께 바다에 왔지만 저기 멀리 창이라곤 하나도 없는 어둑한 카페에 앉아 아저씨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나와 아이들을 볼 수 없다.


등골이 차갑고 축축해서 눈을 떴다. 꿈이었다. 깨어난 후에도 자꾸만 한기가 들어서 오랫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남편과 반년쯤 대화가 끊긴 어느 날이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솟구쳤다. 없는 게 낫다 싶은 남편의 도움을 마음 졸이며 간절하게 기다렸던 느낌이 생생.


이틀 전에 아이를 훈육하는 남편이랑 다투고 묵언수행을 하며 꿈일기를 펼쳐보았다. 뜨겁고 치열했던 작년 여름의 기록이다. 


사진: Unsplashriis riii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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