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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운 Oct 04. 2022

불안의 다른 이름


  가을 타요?

  가을을 ‘타다’니. 사계절 중에 유독 가을에만 붙이는 말이에요. '나 가을 타나 봐'. 20대 어느 가을에는 옆구리가 허전하다면서 짝을 찾아다닐 때도 있었고요. 30대부터는 한층 가라앉은 차분한 가을을 보냈어요. 말수가 줄고 책이나 음악을 가까이하고 지냈어요. 그래서 '너 가을 타나 봐'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돌고 돌아온 가을, 고백하고 싶네요. '나 가을 타나 봐요'


  요즘 드라마 <서른아홉>을 보고 <울프 일기>를 읽고 있어요. 그러면서 '빨리 늙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내 마음속에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말하기 시작하는 방법을(나이 40이 되어) 찾아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사실이 내게 아주 소중하므로, 나는 이제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라고 썼어요. 몇 번을 읽고 따라 적어 보았어요. 나보다 여유로운 모습에 안도했고 반가웠어요.


  어릴 적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다. 많이 누려라."라고 말하던 이모부 말이 생각이 나요.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반복되는 시험에 지겨워하고 있었죠. 속으로는 사람 놀리고 있네 싶었지만 말을 꿀꺽 삼켰어요.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초중고 그 시절만의 순수함은 딱 그 시간에만 들어있더라고요. 그때만 즐길 수 있는 보석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때 그 시절뿐일까요. 가만히 시간을 더듬어보고 있으면 좋았던 기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올라요. 물론 지금도 좋아요. 딱 하나 빼고요. 마음속 불안이라는 녀석. 이 녀석은 대체 언제쯤 사라질까요. 알아차리고 불안을 바라보고 있으면 크기가 점점 커지는 마법까지 부린다니까요.


  이왕에 시작했으니까 끝을 봐야겠어요. 멍청히 바라만 보니까 이 녀석이 점점 커져서 버겁네요. 이 녀석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바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글쓰기도 독서도 엄마도 아내도 나에게도. 되게 욕심이 많죠. 그런데 '잘'하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무언가 기준이 있다면 일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살고 싶어요. 안타깝게도 뭐가 잘하는 건지 모르는 게 현실이지요.


  다행히도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서는 말하기 쉬워요. '잘했다!' 싶거든요. 그럼 혹시 이 녀석이 나를 잘 살게 도와주고 있었을까요. 음, 에너지 원천까지는 과하고 에너지 일부는 되었나 보다 싶어 지네요. 그렇다면 미래는 모르겠고 오늘 하고 싶은 일이나 잘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네요. 뿌리까지 들여다보고 나니 불안도 제법 작아진 것 같고요.


  지난 주말 아이 그림 일기장에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요. "차창밖에 노랗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바람 따라 황금빛으로 반짝거렸다. 가을은 고마운 계절이다." 아이 글씨로 적어놓은 이 문장은 너무 예뻐서 몰래 훔치고 싶었어요. 우리를 지금 여기로 데려다주는 노랗게 익은 벼, 불어오는 바람이 소중한 10월 어느 가을날입니다.




Photo by Autumn Mott Rodeheav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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