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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운 Oct 24. 2022

가을의 기쁨

부제: 너무 좋은데 표현이 모자라


좋다. 가을이어서 좋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시원하다. 긴 팔에 긴 바지, 가벼운 점퍼와 운동화. 부담 없는 옷차림이 어울리는 편안한 가을이다.


시월의 어느 맑은 날 오후 네시. 씩씩하게 자신의 하루 일과를 마친 아이를 데리러 간다. 세 살인 아이는 스스로 밥을 먹고(손가락으로 밥알을 세서 먹지만), 밤잠도 제법 길게 잔다. 말은 더듬더듬 연습 중이지만 의사 표현만은 분명하다. 배우고 싶은 바디랭귀지를 구사한다. 모든 손짓이 내게 기쁨인 이 아이를 '기쁨'이라 부르겠다.


오늘은 기쁨이와 긴 하원 시간을 보내려 한다. 긴 그림자와 짧은 그림자가 손을 잡고 공원으로 걸어간다. 공원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기쁨이 앞으로 마른 나뭇잎 한 장이 공중에서 천천히 떨어진다. 기쁨이는 자기 손보다 큰 낙엽을 줍고 나무를 올려다본다. 갈색으로 마른 나뭇잎과 아직 초록색이 남은 나뭇잎이 함께 매달려있다.  


단풍과 낙엽. 단풍이란 이름의 나무가 있어서일까. 전에는 단풍과 낙엽을 각각이라 여겼다. 단풍은 붉은색, 낙엽은 갈색. 하지만 계절이 바뀌며 색이 변하는 모든 잎은 단풍이고 말라 떨어지는 모든 잎은 낙엽이다. 단풍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사귀를 노랑 빨강 갈색으로 물들인다. 나뭇잎 하나하나 물들어가는 풍경은 꼭 아침에 졸린 기쁨이의 옷을 갈아입히는 내 손길 같다. ‘자, 팔 들어야지. 바지에 발 넣고, 반대 발도. 양말도 신자.’ 구석구석 닿는 다정하고 꼼꼼한 손길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가르며 기쁨이를 잡아본다. "잡았다" 까르르 웃는다. 기쁨이 웃음소리를 자꾸 듣고 싶어 계속 잡는다. 스무 번쯤 기쁨이를 잡으면 나무 정자에 다다른다. 일명 도넛 정자다. 도넛을 사면 정자에 가서 먹었고, 정자에 가면 가방에서 도넛을 꺼냈기 때문이다. 오늘도 가방에 초코가 잔뜩 묻은 도넛이 들어있다. 참새가 방앗간 가듯 기쁨이는 자연스레 정자에 앉는다. 나를 닮아 동그란 이마, 갈매기 모양 눈썹을 가진 기쁨이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도넛을 기대하고 있다.(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 오동통한 볼살과 두툼한 입술에 웃음기가 어려있다. 포장을 반만 벗긴 초코 도넛을 기쁨이에게 건넨다. "어음청 마딨게따", “응? 뭐라고?”. 엄청 맛있겠다는 말이었다. 오늘은 '엄청'이라는 단어를 익힌 모양이다. 매일이 새로운 기쁨이다. 


이쯤 되니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한 구절이 떠오른다. "글쓰기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은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고 흥분이나 희망을 느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절망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결코 완벽하게 종이에 옮겨 적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마음과 딱 들어맞는다. 모든 체력과 시간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아이가 있어 너무 좋은데 완벽하게 글로 옮길 방법을 못 찾겠다. 그는 같은 책에서 “글쓰기를 연습하되,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라.”라고 격려한다. 이야기를 계속해본다. 


실용주의자인 나는 모든 일에 쓸모를 찾는다. 이런 내가 아이와 함께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어 보이는 까꿍놀이와 잡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대화는커녕 아이는 무슨 말인지 해독하기도 어려운 말을 한다. 그런데 아이와 보내는 무위의 시간에서 이루 표현하지 못할 기쁨과 행복이 솟아난다.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플 정도로 귀여운 기쁨이와 함께할 수 있어 좋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에서 짧고 오동통한 기쁨이의 손을 잡고 고백한다. "기쁨아 네가 엄청 좋아!"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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