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 Descansador Jun 24. 2018

4. 닮은 듯, 너무 다른

자의 반 타의 반 이방인을 위한 변명  

내가 느낀 멕시코인들의 모습이 그랬다.

나에게 그들은 닮은 듯, 너무 다른. 그런 존재였다. 

어쩌면 이전 글들에서 언급했던 그런 '미국화된' 멕시코 친구들에게 실망한 채,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일찌감치 조금씩 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화된 멕시코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먼저 멕시코인들의 전반적 성향에 대해서 내가 느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문화 전반에 대한 매우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아직도 그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문화와 사회, 경제를 아우르는 자료를 접하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다만, 나의 

한적인 문화적 배경과 부족한 이해로 인해 꽤 편향된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는

순전히 나의 다문화적 포용력의 부족에 따른 것으로 부디 너그러히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약속한 시간으로부터 30분 정도 늦는 정도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 친구는 정말 좋은 친구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직접 경험해보진 않았으나 내 주변 친구 중엔 약 3시간 정도를 기다린 사람도 있다.

(그 시간을 기다린 그 친구의 인내심도 정말 높게 평가할 만하다) 


나로선 잘 이해가 안되는 점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늦음에 대해서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찍 와서 기다린 사람만 바보가 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직설적으로 그들의 안일한 태도를 나무라게 되면 그들의 관계는 지속되기 매우 어렵다. 멕시코 사람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좋은 이미지가 다치고 훼손되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한다. 그것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망신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관계는 그보다 나빠질 수는 없다. 




멕시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고도,
자신의 좋은 이미지가 다치지 않길 기대한다.



말로 설명하기는 꽤 힘든 미묘한 부분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좋게 보여져야 하는' 자신의 이미지는 스스로의 만족에 무게중심이 실려있다. 내가 당시 미묘한 공통점을 찾았던 일본 문화와 비교하여 생각해보도록 하자.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로 흔히 이야기하는 것이 메이와쿠(めいわく)인데, 이는 자신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늘 조심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일본인들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무게중심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 미묘한 맥락의 차이가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좀더 말을 풀어보자면, 일본인들의 메이와쿠는 나로 인해 잠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갈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고 조심하는 것인 반면 멕시코 사람들이 중시하는 자신의 이미지는 자신이 내키는대로 

말과 행동을 하고, 혹 그것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칠 지라도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그 무엇이다. 


 

과달라하라 Centro의 어느 골목 



솔직해지자면 이러한 그들의 심리적 메커니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나도 완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는 남들의 피해나 언짢음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이나 '피치 못할' 사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내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행동하더라도 상대방이 나에게 험한 말을 하지 못하는(혹은 안하는) 결과의 학습을 통해 스스로의 '좋은 이미지'에 대한 믿음을 거꾸로 유추하고 보다 강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훌륭한' 이미지를 심리적 방어기제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다소 비뚤어진 

자기인식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길 원하고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지속하길 원하면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고,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멕시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고도, 자신의 그러한 좋은 이미지가 다치지 않길 

기대한다. 

 

그래서 그들은 늘 이유가 있다. 

내 친구의 친구가 3시간씩이나 약속에 늦은 이유는 집에서 나오기 전 열쇠를 30분 동안이나 찾았기 

때문이고, 나오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를 만나 1시간 가까이 수다를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따라' 차가 너무나 막혔고, 알고 보니 차에 기름도 없어서 주유소에 들러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위의 예가 과장되었으며 적지 않은(어쩌면 매우 많은) 비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의 입장에서 그들은 적지 않게 내 뒤통수를 때렸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내 회포를 풀어보고자 했음을 밝힌다. 


멕시코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표현 중에 "Mi casa es tu casa(나의 집이 곧 당신의 집이다)." 라는 

표현이 있다. 풀어 이야기하자면 우리집 대문은 당신을 향해 언제든 활짝 열려있으니 거처가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집에 머물러도 된다는 따뜻한 메세지다. 사실 멕시코에서 알게 된 표현 중 이만큼 내게 복잡한 생각이 들게 하는 표현도 없는 것 같다. 글쎄.. 과연 그게 그들의 진심일까? 


이 말을 액면가 그대로 믿고 그들의 대문 앞에 찾아가 '오늘밤에 당신의 집에 재워주실 수 있나요?' 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들은 그럴 수 없는 이유와 함께 "Tal vez mañana(어쩌면 내일은 될지도 몰라)." 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좋은 이미지는 훼손되지 않고, 그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므로 그들은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멕시코 현지에서 적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거주한 이들)이 느끼기를 멕시코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가벼운 호의와 친절은 매우 인상적이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이나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발을 빼곤 한다. 내가 위 표현을 접할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동화같았던 과나화또(Guanajuato)의 마을 전경


Mañana(내일, 아침)라는 단어는 멕시코 및 중남미 사람들의 일을 미루는 성향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로, 그들은 Mañana와 Más tarde(나중에, 좀 더 늦게)를 입에 달고 산다. 실제로 외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문화의 이러한 측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중남미 사람들도 Mañana라는 단어를 사용해 자조 섞인 풍자를 하곤 한다. 그들은 분명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 멕시코 사람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짧았던 체류 기간과 부족했던 경험, 멕시코 사람들과의 비교적 피상적인 관계 등으로 인해 내가 충분히 편향적 시각을 가질 수 있음을 누구보다 겸허히 인정한다. 그리고 내 스스로도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경험을 하면서 시간과 기회가 충분치 않았음에 지속적으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나는 체류 기간 동안 주어진 조건 속에서 그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그들 안에 융화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다. 그런 결과 여러 제약조건들에도 불구하고 나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손에 쥐고 귀국했다고 자부한다.


앞서 말한 부정적 측면들 말고도 그들의 장점 역시 무수히 많다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멕시코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굉장히 친근하고, 신체적인 접촉 또한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인사법을 예로 들자면 멕시코 및 중남미에서는 대부분  남녀간, 그리고 여자들 사이의 인사가 서로의 볼을 맞대고 가볍게 '쪽' 소리를 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맞대는 것은 볼이고, 입술은 그저 가볍게 소리만 내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의 일부 지역에서는 남자들 사이에서조차 이와 같은 인사법이 흔한 것 같다. 여행 중 해당 지역의 어떤 남자와 얼떨결에 이런 인사를 나누고 매우 새롭게 느꼈던 경험이 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도 웃는 얼굴로 아무 거리낌없이 'Buenas(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이며, 여행자가 길을 찾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이러한 친절함은 멕시코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남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성이다. 이들의 일관된 따뜻함에 힘입어 나는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도시를 거쳐가며 여행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고, 매일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하나 하나가 모두 기대되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이라면 그들과의 대화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멕시코 생활 및 중남미 여행을 거치면서 알게 된 점이지만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아시아인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들에게 더욱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그들이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 대상이 되는 것만 같았다. 스페인어를 잘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그들에 대해서 궁금하고 더 알고 싶다는 노력을 (언어적 +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표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나중에 여행 이야기를 할 때 더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겠지만,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에 여행 또는 체류 계획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배우시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전 포스팅에서 추천해드린 '듀오링고' 커리큘럼을 마스터할 정도라면 차고 넘친다. 단언컨데, 그 국가의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현지 언어만큼 강력한 도구는 없다. 






이들의 일관된 따뜻함에 힘입어 나는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도시를 거쳐가며
여행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고, 매일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하나 하나가 모두 기대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3. 가난한 나라, 부자 동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