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영어선생님
아버지 친구였다. 중학교 이학년이 되자 그가 우리 학년의 영어 선생을 맡게 되었다. 그는 내가 친구의 아들임을 알게 되자 나를 교무실로 불러 공부 열심히 하라고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의 영어 수업은 나쁘지 않았다. 발음도 유창했고 문법도 잘 가르쳤다. 하지만 교수법이 탁월하지는 않았다. 아버지 또래는 이미 오십 줄을 바라보는 나이였고 그 역시 오십이 되었거나 혹 그보다 한 두 살 더 많았을 것을 생각하면 그의 교수법은 어쩌면 고리타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성문기본영어 정도가 대세였던 시절이었고 영어 교육 열풍이 불기도 전이었다. 중학교 이학년 영어는 내게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나게는 공부 말고도 관심 가져야 할 일들이 많았다. 금성출판사나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빌려다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어머니는 내게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학교가 술렁거렸다. 그 전날 오후 그는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 자기 의자에서 잠이 들었고 청소시간에 학생들 몇이 교무실 청소를 하러 올 때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청소를 하려고 그의 어깨를 흔들자 그는 그대로 의자에서 흘러내렸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혀를 늘어뜨린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조문을 갔고 나는 가지 않았다. 중학교 일 학년 때 할머니가 여든몇 살로 별세했고 그보다 전에 중학교 선생이었던 사촌 형이 여름방학에 학생들 몇과 저수지에 멱감으러 갔다가 익사한 적이 있었지만 선생이 학교에서 돌연사한 것은 적잖이 놀라운 소식이었다. 그것도 아버지의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을 보자 나는 아버지도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 독일어 선생이 출근하던 기차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자 나는 중학교 때 영어선생의 일이 떠올랐다. 다행히 독일어 선생 이후로 다니던 학교의 선생이 죽은 경우는 더 이상 없었다.
[사진출처: yetna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