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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Jul 21. 2021

빌보드를 때려 맞히다(3)3명의 여성 제임스 딘

다들 보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걷다, 걸 인 레드

걸 인 레드


틱톡이라는 새로운 SNS를 들어보았는가? 동서양을 불문하고 요즘 10대 초반의 트렌드는 틱톡이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비디오를 만들어 올리는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라이징 스타들을 쏟아내고, 길거리에 들리는 노래를 순식간에 바꿔내고, 새로운 챌린지를 만들어내 따라 하게 만든다. 유행하는 챌린지에 탑승하고 유명인을 잘 따라 하기만 하면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단꿈을 꾸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고로, 10대들에게 '틱톡에서의 나'는 현실세계에서의 나만큼 중요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간에 틱톡에서 아이콘이 된다는 것은 그들에겐 큰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틱톡에서 걸 인 레드란 어떤 존재일까? "Do you listen to Girl in Red?" 이 질문의 의미는 다름 아닌 상대방의 성적 지향성을 묻는 질문이다. 정확히는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를 묻는 질문이다. 


한국에 사는 우리에겐 낯설 수 있지만 쿨한 문화다. 상대방의 음악 취향을 빗대 성적 지향성을 묻다니 필자는 아주 멋지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걸 인 레드가 퀴어, 특히나 레즈비언의 아이콘이 된 것은 애초부터 그의 노래에 '퀴어'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노래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즈비언의 감성을 노래한 가수는 애초에 몇 없었다. 대중들이 그에 목마를 만도 했다.


퀴어 요소를 노래 전면에 내세운 가수들이 몇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다 남자다. 조지 마이클, 아담 램버트, 샘 스미스, 트로이 시반까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인 퀴어들은 퀴어라곤 하지만 다들 굳이 따지자면 '게이'다. 좀 더 나아가면 백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걸 인 레드는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종류의 아티스트인 것이다. 곁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처음으로 전면에 '나 레즈요' 걸고 나선 것이다.


걸 인 레드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성장 배경 탓도 클 것이다. 걸 인 레드의 본명은 마리 울벤으로 1999년생 노르웨이인이다. 아버지는 경찰관, 어머니는 기술직으로 일하셨는데 일찍이 이혼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음악적 관심사는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셨던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고, 14살 때부터 피아노를 독학했다. 


노르웨이는 놀랍게도 2009년에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국가다. 99년생인 마리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법이 바뀌었으니 커밍아웃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한 예시로 노르웨이의 청소년 드라마인 SKAM에서는 동성 커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온다. 공중파에서, 황금 시간대 드라마에, 아무 제약 없이 동성 커플 베드신이 나온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마리는 2016년 9월 'I Wanna Be Your Girlfriend'라는 다소 직관적인 제목의 노래를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걸 인 레드, '빨간 옷을 입은 여자'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이 곡은 5달 만에 5000 스트리밍을 달성했고 큰 성공을 거둔 음원이 되었다. 


이 노래는 제목만큼이나 가사도 직관적이고 팍 꽂히는 부분이 있는데, 가사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전체적인 내용은 해나라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다. 후렴구의 가사가 간지러운 곳을 정통으로 긁어준다. 너와 친구는 하기 싫어. 뒤는 더 가관이다. 너랑 키스하고 싶어, 숨 막힐 때까지. 이 부분이 걸 인 레드의 셀링포인트인 것이다. 좋아해서 키스하고 싶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을 해 주는 가수가 지금까지 존재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음원의 성공으로 걸 인 레드는 음반 활동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한다. 2018년 걸 인 레드는 chapter 1 이라는 EP를 발매하고 이듬해인 2019년 두 번째 EP chapter 2를 발매한 후 그해 말 World in Red 라는 타이틀로 첫 단독 투어를 떠난다. 두 번째 EP를 발매하기 전, 걸 인 레드는 또 다른 명곡 하나를 발표하는데, 그 곡이 바로 스포티파이에서 걸 인 레드의 곡들 중 스트리밍 수 1위를 공고히 지키고 있는 We Fell in Love in October이다. 


저절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가을날을 노래하는 이 곡은 청자로 하여금 가사처럼 빨간 지붕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두 소녀를 그려 보게 만든다. 마치 하이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것처럼. 사랑에 빠져 상대를 바라보는 화자를 그려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 그리고 역시 직관적인 후렴구. 내 여자가 곧 내 세계임을 연발하는 여성 가수가 2018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깨어있다는 서양 음악계에서도 조금은 센세이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환호했다. 걸 인 레드의 다른 싱글인 Summer Depression과 Girls는 백만 뷰를 달성했고 2020년 1월에는 NME 표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역시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가수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지목했다.(1편 참조)


그리고 그렇게 해서 2021년, 걸 인 레드는 틱톡에서 10대들에게 레즈비언의 아이콘이 되었다. 혹자는 그게 무슨 명예가 있냐, 무슨 소용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21년 그녀는 지금의 데이비드 보위이며 마이클 잭슨이다. 그리고 이 글의 제목처럼 제임스 딘이다. 어쩌면 이 시리즈의 피날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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