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두 살 때부터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나는 대략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부터 기억한다. 어떤 기억이 일렬로 죽 이어지지는 않지만 단편적이긴 해도 드문드문 꽤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모든 게 어색했다. 태어난 것이 처음이라 익숙한 것이 없는 것도 당연하겠다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또래 아이들에 비해 조금 이상하다 싶게 어색했다. 또래 친구들이 노는 데 잘 끼지 못했다. 정글짐에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며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갖가지 놀이를 할 때, 나는 잡히지 않기 위해 뛰는 것도, 누군가를 잡기 위해 뛰는 것이 싫었다. 자연스레 금세 술래가 되고, 술래가 되어도 열심히 잡질 않으니 놀이 자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가 한글을 어떻게 익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집에 있는 많은 책을 읽었다. 나의 부모님은 80년대 대학생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하다 만난 사람들이었으므로 집에는 책이 많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같은 책이 즐비했다.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은 유야무야 지나갔으나, 삼 학년이 되면서 방학이 되면 학교 방학 숙제 말고 아버지 방학 숙제를 받았다. 재미있는 숙제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사이먼 앤 가펑클의 Like a Bridge of Troubled Water를 외운다던가(물론 영어를 읽을 줄 몰랐으므로 나는 노래를 수없이 반복해 들으며 소리가 나는 대로 외웠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고 독후감을 쓰되 줄거리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담을 것, 혼자 식당에 가서 밥 먹고 오기…… 아직도 태어나서 처음 혼자 식당에 가 밥을 시켰던 것이 기억난다 (중국집이었다). 혼자 왔냐는 식당 점원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 자장면을 한 그릇 먹으면서 뭔가 이상하고도 어색한 느낌에 식당 한 켠에 있던 티브이만 뚫어져라 보던 것. 육 학년이 되자 아버지가 우리나라 근대 문학 전집을 사주었다. 한 권에도 수많은 이야기와 시가 셀 수 없이 담겨있었고 그런 책이 열 권도 넘었다. 상록수를 무척 지루하게 생각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육 학년이 되면서 내가 외롭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던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친하다’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친하다’는 매우 다른 듯했다. 나는 아주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그렇게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왕래하며 어울린다는 것을 몰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대로 돌아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던 나와, 학교가 끝나도 삼삼오오 어울리며 놀던 다른 친구들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친해질 수 없던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내 주변에는 나 혼자만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는 나도 몰랐던 나의 생각을 헤아려 이해해준 친구들이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남게 되었고,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열 두 살 이전에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어머니에게 ‘바깥 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대략 8살이나 9살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감정이 드는 일이 아주 잦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도 때때로 ‘바깥 세상과 나 사이의 얇은 막’을 느낄 때가 있다. 가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 웃고 이야기할 때면, 있으면 안될 곳에 있는 것처럼 불안한 감정이 갑자기 물밀 듯 밀려온다. 이런 기분은 대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현실감이 없고, 불편하고, 도망치고만 싶은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도 느낀다는 것은 확실히 좀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다.
스스로가 혼자라는 것, 그리고 혼자인 것은 다소 어색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이후, 혼자인 시간 동안 내가 하는 ‘읽기’라는 활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혼자라는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읽는 행위를 크게 부풀리려는 마음과 다소간의 지적 허영심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일부러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읽지 않는 사회과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철학 책을 읽어가면서 내가 혼자인 것에는 이유가 있고 그것은 너희들은 알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굉장히 주입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미성숙함을 극복하고 건강한 책읽기로 나아간 역사는 부끄럽지만 길지 않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건강한 관계에 접어들고, 여행을 통해 원래 속해있던 세계에서 자의로 한발 떨어져 나올 수 있게 되면서 나 스스로를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나의 불안은 부풀린다고 감추어지지 않는다는 것, 외로움은 벌칙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또한 요가도 아주 큰 작용을 해주었다. 숨 한 번에 몸을 한 번 움직인다는 간단한 룰이 내게 가져온 기쁨과 안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발달과업을 하나씩 거쳐간다. 기기, 걷기, 뛰기 등 신체적인 것 말고도, 처음으로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과업을 때때로 건너뛰고 두 개를 한 번에 겪기도 하면서 조금 이상한 형태로 거쳐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가가야 할 때 다가가는 것을 배우는 대신 헤어지는 법을 배우고, 헤어져야 할 때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대신 시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처럼 무언가 머릿속 회로가 이상한 형태로 접지하고 엉켜서 전류가 흐르긴 하지만 그 전압이 낮은 형태로 흐르는 것이다. 서른 두 살이 되어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요가를 하면서 이제는 이런 꼬인 회로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회로가 꼬였다는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발 떨어지는 법을 배우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불편한 감정이 다가오면 변화는 필연적인 것, 그 과정에서 침샘이 침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머리가 생각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면 성장 역시 필연적이라는 점을 생각해내려고 노력한다. 에릭 호퍼도 어쩌면 자신의 읽기 활동을 통해 스스로 침잠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간단하고 명료하면서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곧 혼자의 시간과 외로움이 성장에 있어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