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블제이 Mar 08. 2021

그러니까 강아지는 그만 쓰다듬으라고!

아니 애가 이렇게 이쁜데 어떻게안 쓰다듬어...

요새는 일을 거의 안 하고 있어서 시간적 여유가 넘쳐흐른다. 일을 안 하는 이유는 간단한데, 나와 장기적으로 일하던 프로젝트들이 암호화폐 암흑기 사이에 하나둘 사라졌고, 일부는 '프라이버시 코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거래가 중지됐기 때문이다. 마케팅부와 실질적 번역부를 함께 운영해야 하는 1인 사업체 프리랜서 번역가, 그것도 테크니컬 번역가에게는 영업이 생명이겠지만, 요새는 출판 번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생각만으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무엇이라도 해야겠지만), 또 요가 가르치는 일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즐거워서 조금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보니 요새는 여기저기로 뻗는 갈림길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장래 희망을 걱정한다는 것이 좀 웃기긴 하지만 인생은 기니까. 기시감이 들면서도 조금은 어색한 이 기분도 얼마나 가겠냐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쓸쓸함이 들 때, 그런 모든 감정에 대한 특효약은 역시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이다.


그래서 강아지를 하루 종일 쓰다듬고 있다. 구름 같은 목 주변 털이나 벨벳보다 부드러운 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금 거친 꼬리털, 턱 아래 송글송글한 털, 입 근처의 휘스커, 배 부분에 난 휘파람 같은 털, 다리 뒷부분에 갈기처럼 난 털, 발바닥 젤리 사이사이의 부드럽고 조금 더러운 털을 비롯해 모든 부분을 적절하게, 강아지가 짜증 내지 않을 만큼 만져야 하므로 이 일에는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들뿐만 아니라 적절한 눈치보기 스킬도 필요하다. 물론 강아지 냄새 맡기도 놓치지 않는다. 배와 겨드랑이에서 나는 달큰한 아기 강아지 냄새를 비롯해서 머리에서 나는 미역국 냄새, 입 근처에서 나는 꾸리꾸리한 냄새, 발바닥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 등등, 강아지 몸의 각 부위에서는 놀라우리만큼 각기 다른 냄새가 난다. 참고로 머리에서 나는 미역국 냄새는 사료 냄새라고 추정 중이다. 즉, 강아지는 먹는 음식에 따라 정수리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다른데 (사람과 똑같지 않은가!), 대부분 사료를 먹는 우리 강아지는 미역국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얘가 하루는 고양이 똥을 먹고 왔거든. 고양이 똥을 먹으면 정수리에서 고양이 똥냄새가 난다.


그러나 이런 나의 데일리 액티비티에 따르는 결과는 참혹하다. 강아지의 분리불안이 심해졌다. 안 그래도 이 강아지는 우리와 두 시간 반 가량 떨어져 비행기, 그것도 화물칸에 실려왔던 충격적인 분리를 겪었다. 게다가 일산 집에서는 우리 엄마와 강아지가 엄청나게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에 엄마와 떨어진 지금 강아지는 자기 무리 중 한 명을 잃은 상태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깨어있는 시간이라면 대부분 강아지를 주물럭거리고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우리와 떨어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고, 덕분에 우리는 제주에 이사까지 왔음에도 성산일출봉 한번 못 가고, 동문시장 흑돼지 바비큐 한번 못 먹었다. 처음에는 둘 다 집을 나서면 곧바로 하울링에 바킹을 시작했는데 요새는 '1분'은 괜찮다. 덕분에 우리는 주기적으로 집을 나서야 하지만 1분 이상 밖에 머물 순 없는 기형적인 상태에 놓여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이 너무 싫었다. 강아지 만지기는 나의 도피처인데! 그러나 그러므로 인해서 강아지의 힘든 시간이 늘어난다면, 그리고 실질적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독이 되는 행동이다. 더 나은 상황을 위해 위를 무위로 돌리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아픈 이별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결국 어떤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독이 되지 않으나 엔터테이닝한 행위들과 결별해야 하며, 그것을 가리고 있는 다양한 기제를 걷어내야만 하는 상태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힘든가. 표면적이고 하등 도움이 되지 않지만 당장의 문제를 눈속임으로 가리고 즉각적 쾌락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그러나 결국 이것은 자기 욕망과의 결별이다. 욕망은 끊임없이 변하는 믿을 수 없는 상대다. 변화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모든 인생의 희로애락과 감정, 욕망은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영화에 불과하다. 상영이 끝난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불이 꺼져도 스크린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자기 자신은 영화가 아니라 스크린이라는 것을 깨닫기. 강아지를 그만 쓰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에 이사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