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지나며
11월 3일이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2022년의 10월이 끝나고 11월이 된 지도 삼 일이 되었다. 10월에는 수많은 이벤트가 있었고,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 중심에 나의 결혼식이 있었다. 나는 혼인신고, 결혼사진, 결혼식을 각각 1여년의 갭을 두고 치루었기 때문에 축하도 세 배로 받았다. 그것이 민망했지만 나에게 있어 결혼은 두고두고 생각해보아도 놀랍도록 신비로운 사건이어서 그런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축하받기를 원했다. 나는 내가 결혼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안할 거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혼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크고 작은 의심과 고민을 반복했다.
나는 후회를 두려워한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은 누구에게나 무서운 것이지만 나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결혼은 결혼하고 나서도 헤어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결혼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절대적인 사건이므로 나는 결혼이 매우 두려웠다. 그리고 나와 구남친현남편의 관계는 결혼을 고민할 무렵 그런 확인 절차 없이도 충분히 좋았기 때문에 더더욱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미 좋고 즐거운데 이것을 다음 단계로 굳이 끌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특히 그것이 되돌릴 수 없는 선을 건너는 사건이라면? 정확히 같은 이유로 나는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도 엄청나게 고민했다. 만약 그것에 대한 결정권이 100% 나에게 주어졌다면 문도는 내 옆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선을 건너는' 일들만이 인간에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음을, 선을 건너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과업은 그 어떤 형태로든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다. 그 한계는 육체적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정신적인 것으로,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에 가깝다. 선을 건너는 것은 곧 디아블로에서 다음 맵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레벨이 100에 가까운데 아직도 카타콤을 돌고 있다면 보상은 미미하다. 레벨업 역시 제 수준에 맞는 맵을 돌 때에 가능한 것보다 수 일이 지나서야 가능하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빈 곳간으로 배를 불리려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때때로 우리는 점점 무서워지는 BGM에 속지 않고, 컴컴한 맵을 밝히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 장소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이 나를 성장시켜주는 적절한 과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나에게 결혼은 그러한 과업의 세계로 넘어가는 커다란 관문이었다. 혼인신고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없이 많은 생각이 들었으나 결혼 이후에 온 단단한 결속감은 그러한 생각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행복을 주었다. 한번 열린 문은 닫히지 않았다. 결혼, 타투, 강아지 입양, 제주도로의 이사, 요가원 오픈이 단 2년 사이에 모두 일어났다. 용기는 상추를 키우는 것과 같아서 때때로 수확해주어야 더 크고 싱싱하며 많은 잎을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행복의 근원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했으나, 결국 스스로 올바른 과업을 찾고 그것에 대응하는 용기를 키워 끊임없이 선을 넘어가는 일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었음을 경험으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