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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Nov 05. 2020

이유식 먹이기 대작전

사람다운 식사를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내는 산후조리원에 머물던 때부터 모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출산 직후여서 그런가 보다 했다. 아직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미처 몸이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젖과 꿀이 흘러넘치는 풍요로운 어머니 대지처럼 변모할 날이 올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심지어 그 다음 주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젖은 찔끔거릴 뿐이었다. 조리원 방에서 쉬고 있다가 정해진 시각마다 콜이 와서 수유실로 올라가던 아내. 이내 돌아와서는 이번에도 젖이 나오질 않아서 얼마 먹이지 못했다며 마음 아파했다. 아기는 엄마의 가슴을 아무리 빨아봐도 뭐가 나오지도 않고 배고픔이 달래지지도 않으니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기만 했다. 모유가 잘 나오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가슴 마사지도 받고, 잠을 충분히 자며 휴식도 취하고, 모유가 흘러넘치게 해 준다고 입소문이 난 차를 마시고 영양제 따위들도 열심히 챙겨 먹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별 수 없이 아이에게 분유만 열심히 먹일 수밖에.


 모유에는 아이에게 좋은 면역 물질이며 영양소들이 풍부하다던데 도통 나오질 않으니 먹일 수가 없었다.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아내는 우리 아가에게 젖도 제대로 주질 못해 미안하다며 매일 울상이었다. 자식이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장면이 이리도 마음 아픈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매년 늘어나는 허리둘레를 걱정하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지만, 꼬마아이였을 때의 나는 밥 먹는 걸 무척 싫어했다. 분유도 그랬거니와 밥을 먹을 때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면 삼키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감감무소식 함흥차사 기다리는 듯했다. 어머니께서는 “제발 밥 좀 씹어서 삼켜라, 네가 소도 아니고 왜 자꾸 입 안에서 되새김질을 하니.”라며 다그치시고 어르고 달래기도 하셨지만 소용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하던 거짓말도 두 개 있었다. 오늘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는 것과 일요일에 교회 봉고차를 놓치는 바람에 주일학교에 못 갔다는 것. 밥은 친구들에게 골고루 한 숟갈씩 나눠주거나 그럼에도 남은 밥은 하굣길에 학교 화단에 몰래 버리곤 했다. 교회는 아무래도 가기 싫었다. 일요일 아침엔 디즈니 만화동산도 보고, 만화 보느라 부족한 아침잠도 마저 자야 하고, 친구들하고 모여 놀기도 해야 하니까.


 다행히도 우리 아이는 나와 달리 식욕이 왕성했다. 모유가 안 나오면 어떠랴, 분유라도 많이 먹으면 되지.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아이는 태어난 직후 한동안은 한 번에 고작 20ml였는데 어느새 한 끼 식사로 240ml씩이나 분유를 먹어대는 대식가로 자라났다. 동화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도 아닌 것이 참말로 빠르게도 자란다. 식사 땐 비스듬히 누워서 누가 뺏아 먹을세라 있는 힘을 다해 젖병 꼭지를 빨아대는데 세상에 이렇게나 열심일 수가 없다. 워낙 열심인지라 식사 중엔 콧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정도다. 다 먹고 나면 일으켜 안은 채 등을 토닥거리면서 트림을 시킨다. “꺼억!” 맛있게 잘 먹었다는 듯 우렁찬 트림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한다. 배부르게 먹고 난 뒤 눈을 끔뻑끔뻑 하며 졸음에 겨워하는 아이. 침대에 조심스레 눕혀 재우고 나면 어찌나 뿌듯한지. 부모들은 자식이 먹는 걸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하던데, 이제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가늠이 된다.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날. 예전과는 다른 낯선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옆에 앉아있던 아이가 입을 오물거리는 게 아닌가. 흡사 앞에 펼쳐진 밥상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았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왜 나만 빼놓고 아빠 엄마만 맛있는 거 먹어? 나는 이거라도 먹어야겠다.”는 듯 손가락을 쪽쪽 빨기도 했다. 분유를 배불리 먹었음에도 성에 차지 않은 듯 입을 쩝쩝거리면서 무언가를 더 갈구하는 표정. 드디어 이유식 먹이기에 도전할 때가 된 것이다. 보통 4~6개월 정도 되면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인다고들 하니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매사 빈틈없는 아내는 벌써부터 이유식 만들기에 관한 책을 한 권 사놨더랬다. 쌀가루, 찹쌀가루 같은 식재료들과 아기 냄비, 이유식을 소분해서 담아 둘 유리그릇, 아기용 숟가락과 도마, 미니 블렌더, 계량기까지 각종 요리 도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아이가 앉아있을 범보의자와 목에 두를 턱받이 등도 진작에 다 주문해놨다. 분명 처음임에도 능숙하게 척척 해 낸다. 어느덧 구경꾼의 자세를 한 채 아내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멋모르는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이제 이유식 먹이기 시작하면 분유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거야? 아깝다. 아직 많이 남아 있던데. 내가 먹을까?”


 내 말을 듣고 아내는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유식 먹을 때도 분유는 계속 같이 먹여야 돼. 그런 것도 몰랐어?”


 나는 그런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여느 아빠들과 달리 제법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고작 분유 먹이기, 트림시키기, 아이 기저귀 갈기, 쪽쪽이 물리고 재우기 따위 간단한 일만 담당했지 어렵고 힘든 일은 대부분 아내가 하고 있었다. 아이의 나이에 맞춰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사야 할 것들을 주문하고, 필요없는 것들은 당근마켓에다 내다팔고, 처음 마주하는 상황을 꼼꼼하게 공부한다. 장기로 치면 주양육자인 아내가 ‘왕’이라면 나는 적어도 ‘차’나 ‘포’ 정도 역할은 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실은 아내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일개 ‘졸’ 정도밖에 안 됐던 것. 육아 노동의 현장에서 입만 살았던 아빠였음을 자각하고 미안해졌다. 나는 아내에게 미안해하고, 아내는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지방에 계시는 양가 부모님들은 손주 육아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이거 원, 온 집안에 미안함투성이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생후 172일째 되던 날 오전, 아이에게 대망의 첫 이유식을 먹였다. 지난 몇 주 동안 타고 놀았던 덕에 이제 익숙해진 범보의자에 아이를 앉혀놓고, 먹다 흘릴까 싶어 목에다가 턱받이를 둘렀다. 간밤에 정성 들여 만든 쌀가루 죽을 전자렌지에 데워서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지 온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기 숟가락에 조심스레 한 술 떠서 아이 입으로 가져갔다. “아아ㅡ 진아, 아아ㅡ 입 벌려봐. 아이, 맛있겠다. 냠냠 쩝쩝.” 식욕을 돋우는 추임새와 함께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밥은 이렇게 먹는 거라고 알려주는 행동이었다. 아이는 난생처음 숟가락으로 먹는 쌀죽이라는 음식이 어색한지 절반은 주르륵 흘려버리고, 나머지 절반은 한참이나 입 안에서 오물거리다가 삼켰다. 다행히도 도저히 못 먹을 음식인 양 게워내지 않고 한 숟갈, 두 숟갈 잘 먹어줬다. 열심히 먹었지만 결국 준비해놨던 60ml의 삼 분의 일 가량만 비워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성공적인 첫 이유식 한 끼였다. 아내와 함께 이번 작전도 훌륭하게 완수해내서 뿌듯하다. 이렇게 눈앞에 닥친 작전을 하나 둘 끝내다 보면 육아의 세계에서 언젠가 하산할 그날이 올 거라 믿어본다.


 어젯밤엔 아이를 안은 채 TV로 <최자로드>를 봤다. 다이나믹듀오의 최자가 기름기 가득한 참치회에다 간장이니 기름장이니 따위 양념 없이 고추냉이만 가득 올려 먹는 장면이 나왔다. 참치의 기름이 고추냉이의 매운맛을 중화시켜 기가 막힌 맛이 난다며 감탄하고, 이런 안주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지, 하며 소주를 한 잔 들이켜는 장면도 이어졌다. 캬아. 그걸 보고 있으니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단 하루도 저녁 술 약속을 잡은 적 없고 회식도 없이 매일같이 칼퇴근을 했다. 하루 온종일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아내에게 미안해서라도 집에 일찍 들어와야지. 그나저나 언제쯤이면 우리도 최자처럼 늦은 밤에 회에다 소주 한 잔 함께 기울일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올 게다. 아들도 얼른 자라서 우리와 함께 술 한 잔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아직 이유식도 못 뗀 아이에게 하는 것치곤 너무 이른 부탁일까. 돌이켜 보면 나도 아버지와 함께한 술자리가 손에 꼽을 만큼 몇 번 안 되니 무리한 부탁이긴 한 것 같다.






 ※ 첫째 주에는 곱게 간 하얀 쌀가루로 미음만 끓여서 먹였다. 그다음 주부턴 애호박, 청경채, 브로콜리를 차례로 넣어가며 이유식을 만들었다. 만든 음식들은 조그마한 계량 그릇 세 개에 나눠 담아 냉장 보관했다가 먹일 때마다 전자레인지에 따끈하게 데워서 대령했다. 첫째 달엔 채소 종류만 돌아가면서 먹이고, 두 번째 달부터는 소고기, 닭고기 등 육류를 섞여서 먹이라고 한다. 이게 바로 4~6개월 아기들이 먹는 ‘초기 이유식’이다.





저 자그마한 그릇에 담긴 이유식의 절반 정도를 흘리거나 남기거나 혹은 입에 잔뜩 묻히거나 하지만, 별 무탈하게 잘 먹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나중에는 입에 이렇게 묻혀가며 먹으면 안 돼. 매너 없어 보여. "Manners maketh man."이란다.
다음 주부턴 채소 따위 졸업하고 고기를 먹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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