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돌 Nov 27. 2020

아이 없이 우리 둘만 있으니까 어색한데

우리 다음부턴 이러지 않기로 해

 실로 오랜만에 아이 없이 아내와 나,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근처에 사시는 아내의 고모님 덕분이었다. 너희들, 출산 이후 6개월이 넘도록 아이에게 붙들리는 바람에 데이트 같은 걸 하지 못했잖니, 대신 아이를 맡아줄 테니 잠깐이라도 바깥바람을 쐬고 오렴. 이렇게나 고마운 말씀을 먼저 꺼내 주셨다.


 “아니, 죄송해서 어떻게 그래요. 안 그러셔도 돼요.”


 대답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고맙지만 괜찮습니다.’라는 정중한 사양의 의미였지만, 그 말을 하고 있는 우리 표정은 글자와는 사뭇 달랐다. 달뜬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설렘이 묻어 나왔을 터. 말도 안 되는 비유를 갖다 붙이자면, 성인이 되고 난 후 처음으로 맞은 명절에 어르신들이 주시는 세뱃돈 봉투를 받고서,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걸 받아도 되나.’ 겸연쩍어하며 “아아니이, 뭘 이런 걸 다 주세요.”라고 말하지만 양 손은 이미 공손히, 하지만 꼬옥 봉투를 부여잡는 모습 같달까.


 결국 우리는 달콤한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니, 기꺼이 받아들였다. 화창했던 지난 토요일 오후. 거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아이를 맡기고 고모님네 집 문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오니 불과 몇 분 전까지 코로 들이쉬었던 공기가 일순 다르게 느껴졌다. 이렇게나 청량한 가을의 맛이라니. 왜 방금까지 유모차를 끌고 있을 땐 느끼지 못했을까. 둘만 남게 되자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미세먼지 한 점 없는 하늘은 맑고 푸르렀고, 가을 단풍은 노랗고 빨갛게 무르익었고,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고, 어르신들은 인자한 미소를 띤 채 지팡이를 짚고 점잖게 걸어 다니셨다.


 무려 6과 1/2개월 만인 둘만의 데이트의 목적지는 아이를 낳기 전에 자주 들르던 홍제천변의 한 카페였다. 평일 밤이건 주말 낮이건, 심지어 하루에 두 번까지 시간 날 때마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그곳. 집에서 천천히 걸어가면 3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카페에 가서 어떤 음료를 마실까, 즐겨먹던 과자도 함께 시켜야지, 아직도 샌드위치나 파니니를 팔고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기 시작했는데 아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시골 마을 입구를 지키는 장승도 아니면서 갑자기 우뚝 섰다. 대체 왜 그러냐는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왼손을 내민다.


 “같이 걷는데 손을 왜 안 잡아줘?”


 아내는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우리 그랬었지. 연애할 때도 결혼한 후에도 항상 손을 잡고 걸었었는데. 어느새부턴가 각자의 손은 기약 없는 이별을 맞이하고 기나긴 시간을 홀로 견뎌내는 중이었다. 아이를 키우게 되니 바깥에 나갈 때 한 명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다른 한 명은 장바구니를 들거나 놓칠 수 없는 순간의 아이 사진을 찍곤 한다. 상대의 손을 잡고 걸을 일이 도통 없었던 거다. 언제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걸었나, 떠올려보니 그게 벌써 6개월도 전이다. 미안해하면서 오랜만에 오른손을 내밀어 아내의 왼손을 잡고 걸었다. 그런데 꼬옥 붙잡고 가던 손은 재회의 기쁨이 무색하게도 채 5분도 안 돼서 놓았다. 손을 잡고 걷다 보니 더워서 손에 땀이 났다.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았던 날엔 긴장해서 손에서 땀이 났던 것 같은데, 이제는 왠지 낯설기도 하고 둘 다 몸이 피곤하기도 해서 그런지 손 잡고 걷는 게 쉽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결혼과 육아를 먼저 경험한 지인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자연스레 부부 사이가 예전 같지 않게 될 거라는 말. J 과장은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아내와 둘만의 시간을 가질 때마다 어색한 침묵에 빠져든다고 했다. 둘 사이에 흐르던 적막을 견디려고 근처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아무거나 시켜 밥을 먹는다고. 대화가 있어야 할 곳에 음식을 채워 넣어 버티는 거였다. 일찌감치 아이를 다 키워 낸 M과 K 형은 자식이 적어도 돌은 지나야 부부관계 생각이 날 거라면서 19금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작 6개월 차인 너희는 지금은 아이 보느라 둘 다 지쳐서 야밤에 딱히 그럴 힘도 없을 걸, 아니, 그러고 싶지도 않을 걸. 돌이 웬 말이랴. B형은 첫째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나이가 됐음에도 매일 밤 본인, 형수님, 그리고 아이 셋이 한 침대에서 잔다더라. 이럴진대 부부관계는 무슨. 이제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사는 거라 한다. 아이 낳은 부부들은 어째 다들 이러고들 산다.


 아이가 사랑스럽지만 우리의 삶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지는 말자. 주변 부부들의 차디차게 ‘식은 애정’ 전선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남들처럼 그러지 말자는 말을 아내에게 건넸다. 그러니까 응당 부부라면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도 좀 하고(?) 살아야 된다니까. 요새 아기 보느라 잠을 못 자니 살이 빠진 것 같아. 남편 몸매가 좀 섹시해진 것 같지 않아?”


 “웃기시네. 하긴 뭘 해. 매일 밤마다 힘들어서 곯아떨어지더만. 그거(?) 뭐, 쓰지도 않을 거 뭐하러 달고 있냐. 용불용설 몰라?”


 아내의 비웃음에 나는 작아졌다. 아아, 고개 숙인 남자여.


 일순 의기소침해졌지만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갔다. 이번에 나온 크러쉬 새 앨범의 듀엣곡들이 좋더라, MBC에서 새로 하는 드라마 <카이로스> 정말 흥미진진하던데, 사람들은 왜 <펜트하우스> 따위 막장 드라마를 보는지 모르겠어,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진짜 너무 어이없지 않냐, 카페에서 그러는데 원래 가던 곳 말고 다른 반찬가게 오징어젓갈이 더 맛있대, 우리 재작년 이맘땐 그리스 산토리니 갔었잖아 거기 되게 좋았지, 나중에 언젠가는 아파트를 벗어나서 단독주택 짓고 살자. 육아 때문에 그동안 잠시 끊어졌던 우리의 서사에 숨을 불어넣어 다시금 이어갔다. 아이를 낳기 전에 둘이 나눴던 ‘보통의 대화’, 이게 대체 얼마만인 건지.


 아이를 키우게 되니 요즈음에 집에서 나눴던 대화들은 거진 육아에 관한 것들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며 “까꿍, 아이 조아, 귀여워잉.” 같은 단순한 유아용 언어를 사용하거나, 아내와 함께 쇼핑 앱에서 아기 옷이나 분유, 기저귀, 이유식거리들을 주문하고, 혹은 오늘 있었던 이런저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잠에 들면 혹여나 깰세라 들릴락 말락한 모기 소리로 아주 잠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까무룩 잠이 들었다. 예전에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고 살았었나.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다.


 한참이나 우리만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 홍제천을 걷다 보니 가을 단풍이 근사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장면이었다. 눈을 즐겁게 하는 단풍잎들을 뒤로하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6개월이 넘도록 격조했던, 정말 오랜만에 들른 카페는 여전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코르타도 커피도, 내가 즐겨마시던 매실 소다도, 따끈한 통밀 쿠키도 예전 맛 그대로였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6개월 전과 똑같고 카페 안을 은은하게 채우는 제3세계 음악도 정겨웠다. 아이를 낳기 전의 그때 그 세계로 귀향한 듯해서 반갑고도 못내 고마웠다.


 그런데 한참 동안 둘만의 여유를 즐길 줄 알았더니만 카페에 들어온 지 불과 30분도 안 되었을 즈음부터 아이 얼굴이 눈에 어른거렸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혹은 엄마 아빠를 찾아 으앙, 하고 우는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울렸다. 아내도 나와 똑같은 증상을 보였다. 몸은 카페에 앉아 있는데, 머리에선 자꾸만 고모네에 있는 아이 생각이 난다고. 이런 지경이니. 도저히 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남은 음료를 테이크아웃해서 얼른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리고 발걸음을 바삐 놀려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을 때의 해방감을 마음껏 누리려고 했건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 얼굴을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도 아이 부모가 다 됐나 봐. 진이 보고 싶어서 집으로 빨리 가게 되네.”


 아내는 내 말을 듣고 싱긋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아니, 한가로이 웃을 때가 아니었다. 발걸음을 서둘러 우리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홍제천의 울긋불긋한 가을
즐겨가던 카페 '롯지190'에서






 우리의 귀갓길을 재촉하던 아이는 별 무탈하게 자라서 드디어 200일을 맞았다. 이제는 누워있기만 할 뿐 아니라 앉아있을 수도 있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앞으로 기어가기도 하고,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손으로 책장을 넘길 줄도 알게 됐다.


 매일같이 육퇴 시각만 간절히 바라면서 시계를 힐끔거리고, 아이가 칭얼거릴 때마다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고, 언제쯤 이 조그마한 것이 자라서 우릴 덜 힘들게 할까 하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런 불평에도 아랑곳없이 이렇게나 잘 자라고 있다.



이전 01화 이유식 먹이기 대작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