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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Dec 23. 2020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사고는 한순간에 벌어지는 법

 처갓댁에서 돌아온 아내의 얼굴이 어째 흙빛이었다. 아내는 거의 매일 아이와 함께 집에서 5분 거리인 처조모님댁에 들렀다 온다. 거기엔 아내의 할머니와 고모님 두 분이 계신다. 혼자서 아이 돌보기가 쉽지 않은데 육아를 도와줄 어른들이 근처에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어딜 나가지도 못하는 시국에 이렇게라도 오가며 바람을 쐴 수 있으니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다. 아이는 외가에서도 마치 제 집인 양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그래서 별 일 없겠거니 했다. 오늘따라 왠지 아내가 피곤해서 안색이 안 좋은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아내가 쭈뼛거리면서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오늘 큰 사건이 있었어. 진이가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어.”


 “뭐라구! 그게 정말이야?”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깜짝 놀랐다.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물었다. 아내가 대답하길, 아이를 작은방 침대에 재우고서 한참이 지났는데 조그맣게 우는 소리가 들려서 가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더란다. 순간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고. 아이는 침대 위에도 없고, 바닥에도 없고, 책상 밑에도 없었다. 얘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더듬어 가 보니 벽과 침대 사이의 좁은 공간에, 재주도 용케, 그 사이에 아이가 떨어져 있더라는 것 아닌가. 녀석이 잘 때 몸부림이 심해서 양 옆으로 베개 산성을 높다랗게 쌓아서 막아뒀는데도 기어코 그 벽을 넘어서 바닥까지 추락한 것이었다. 쿵, 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는데 대체 언제 어떻게 떨어진 걸까.


 기겁한 아내가 얼른 달려가서 아이를 안았더니 금방 울음을 그치고 배시시 웃더란다. 내가 언제 울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아직 쏟아내지 못한 눈물이 눈 속에 한 가득 담겨 있는데도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였다고 한다. 아내가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울상을 하고 있으니 마치 안심시키듯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고.


 “엄마, 울지 마요. 나는 괜찮으니까.”


 욘석이 7개월짜리 아기 주제에 어디서 어른스러운 척을 하는 건지.  


 혹여나 몸에 이상이 있나 싶어서 조심스레 이곳저곳 살펴봤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다고 한다. 머리에 혹이 나거나 벌겋게 부어오른 곳도 없고 팔다리도 예전과 똑같이 힘차게 퍼덕거리고 손으로 이것저것 움켜쥐는 것도 문제없고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추고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고개도 돌아가고 엎드려서 기어가는 것도 여전히 잘하더라고. 다행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영유아 낙상 사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다급한 질문들과 저마다의 경험담에 의사의 답변들이 뒤섞인 글들이 여럿 보였다. 대처 방안을 요약하자면,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X-레이 사진 같은 걸 찍게 하면 방사선 때문에 좋지 않다. 의식을 잠시라도 잃었다거나 구토를 계속하거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질 못하거나 몸을 움직이는 데 이상이 있거나 하지 않으면 괜찮다. 눈에 보일 만큼 뚜렷한 외상이 없다면 일단 안정시키고 달래 봐라. 뼈나 관절이 다쳤을 수 있으니 갑자기 안거나 들지는 말고 조심스럽게 만져야 한다ㅡ는 내용이었다.


 안쓰러움과 걱정스러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나도 아이와 함께 놀았다. 늘 하던 대로 들어 올려 안아보고 엎드려서 앞으로 기어가는 것도 보고 매트 위에 앉혀서 큐브 장난감을 갖고 놀게도 하고 어린이 동요도 불러주고 그림책도 읽어주고. 침대에서 떨어지기 전과 특별히 다른 점을 나 역시 느낄 수 없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들은 직후부터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 들숨 날숨을 제대로 못 쉬다가 안심이 되자마자 숨을 크게 몰아 쉬었다. 큰 숨 한 번에 남은 걱정을 떨쳐내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럼에도 한 가닥 불안함이 계속 남아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사흘 정도는 더 지켜봐야겠지?”


 “응. 나중에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아내도 나도 아직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어서 며칠 더 지켜보기로 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이는 멀쩡했다. 어째 더 잘 먹고 더 잘 싸고 더 잘 놀고, 게다가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물건을 움켜쥐는 모습이 예전보다 힘이 더 좋아진 것 같다. 다행이었다.


 다만, 이상한 변화가 하나 있긴 하다. 늦은 밤, 아이가 졸려하면 아내가 안아서 재우거나 내가 눕혀서 재우곤 했다. 나는 아무리 안아봐도 내 품에서 아이가 잠들지는 않더라. 이런저런 시도 끝에 터득한 나만의 방법은 이랬다. 우선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쪽쪽이를 물린다. 나도 아이 옆에 함께 눕는다. 그리고 아주 가볍게 배를 토닥토닥 혹은 쓰다듬는다. 몸을 뒤집으려다가 잠이 깰 수도 있으니 다리를 살짝 잡아줘서 못 뒤집게 하고, 조용하게 자장가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아내에 비해서 시간은 한참이나 더 걸리지만 이런 방법으로 재울 수는 있었다. 그런데 아이에게 ‘침대에 누워서 자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걸까. 내가 예전처럼 아이를 침대에 눕힌 채 아무리 재우려 애를 써봐도 이내 으아앙, 하고 울음이 터지고야 만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손짓을 한다.


 비단 침대 때문만은 아닐 터. 아프거나 무서울 때 아이가 의지하는 곳은 보다 더 편한 느낌을 주는 사람일 게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아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는 그 사람이 아무래도 엄마일 수밖에 없고. 아무리 내가 일주일에 두세 차례나 재택근무를 하고 출근하는 날에는 무조건 칼퇴해서 저녁 시간에는 줄곧 아이를 돌본다 하더라도, 엄마에 비해 아빠가 더 편안함을 줄 수는 없을 거다. 그래서 추락 사고 이후로 졸릴 땐 꼭 엄마 품에 안겨서 잠들려고 하는 것 같다.


 문득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두 분 다 직장에 나가시는 맞벌이 가정이어서 어린 나와 동생 둘이서만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렸을 때 누군가 내게 소원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저는 재벌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어른들이 녀석 웃기다는 듯 꼬맹이 주제에 재벌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하냐는 말에는 “돈 많은 사람이요. 돈이 많으면 엄마가 회사 안 나가도 되잖아요.”라고 재차 대답했다. 매일 밤 어머니께서 언제 퇴근하시나 기다리다 잠이 들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귀가 찢어지는 사고가 났다. 마침 쉬는 날이어서 집에 계셨던 어머니와 함께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갔다. 목청 좋은 동생은 온 병원이 흔들릴 만큼 크게 울어댔다. 상처는 제법 심해서 국소 마취를 하고 귀를 꿰매야 했다. 난생처음 몸에 칼을 대게 된 아들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어머니께 동생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엄마 필요 없다! 행님 불러주라. 행님 오라고. 행님아! 으아앙.”


 이런 불효자식을 봤나. 아마도 그때 동생에겐 어머니가 아니라 형이 더 ‘보고싶은’ 사람이었을 게다.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종종 그때 이야기를 하시며 눈가가 붉어지신다. 너희들이 어릴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놈의 돈이 뭐라고, 일하러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나는 나의 어머니와는 달리 내 아이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프거나 힘들 때 아빠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육아라는 건 아이를 키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아이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한 부단한 자기 발달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 참, 변한 게 하나 더 있긴 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아이는 요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듯 자꾸 침대 가장자리로 기어가서 고개를 내밀어 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때의 아찔한 맛을 알아버린 걸까. 그 맛을 잊지 못하게 된 걸까. 이놈의 자슥이 아직 추락의 뜨거운 맛을 덜 봤구만기래. 너 그러다 또 다친다.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뒤집기부터
침대에서 잠동무 겸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강아지 인형 '샤샤'와 함께
사방을 가드 쿠션으로 둘러놓은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뒹굴뒹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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