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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13. 2024

여교수의 은밀한 과거

싸이월드로 모든 걸 알아낼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실은 별 내용이 없는 글임을 서두에서 미리 밝혀둔다.



 아내가 즐겨 찾던 동네 카페가 있었다. 이 동네에서 커피가 제일 맛있는 곳이라고 했다. 나도 몇 번 같이 가 봤는데 음료의 맛뿐 아니라 분위기도 차분한 것이 마음에 적이 들었다. 아내와 나뿐 아니라 아이도 그 카페를 좋아했다. 디저트가 맛있어서였다. 들를 때마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휘낭시에 몇 개를 금세 먹어치웠다. '위라이크'라는 이름의 가게. 아쉽게도 몇 달 전 그동안 감사했다, 홍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짤막한 말을 남긴 채 문을 닫고 말았다. 아내는 소중한 단골 가게를 하나 잃었다며 아쉬워했다.


 그 후로 어느 날, 아내가 달뜬 얼굴로 말했다. 마치 내가 꼭꼭 숨겨놨던 비상금을 찾아냈을 때의 표정으로. "나 위라이크 찾았어. 홍대에 '오디너리 커피'라는 데가 새로 열었는데 바로 거기래."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알아냈냐고 물으니 동네 맘카페에 누군가가 올렸단다. 그 누군가 역시 예전의 위라이크를 애정했다 한다. 왠지 부담스러워할까 봐 어디로 이사 가는지 물어보진 못하고서 인터넷에서 홍대에 새로 생긴 카페를 죄다 찾아보고, 검색된 사진과 메뉴를 분석하고, 바로 이곳이다 싶은 곳에 확인 전화까지 한 끝에 기어코 알아냈다고. 무서울 정도의 집요함이었다. 의아하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했다면 어디로 이사 가는지 그냥 물어보지.


 아내가 감사하게 된 '맘카페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대학동기 W가 생각났다.


 때는 2003년,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기숙사에 살았다. 2층 침대가 놓인 2인 1실. 나도 룸메이트도 신입생이어서 방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매일같이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서 자취하는 동기 방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겨우 정신을 붙들고서 방에 돌아오면 흥에 겨워 노래를 불러대곤 했다. 너무 자주 마셔서일까, 너무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서일까, 혹은 너무 형편없는 실력으로 불러서일까. 결국 앞방에 살던 사람이 내 방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조용히 좀 하세요. 시끄러워 죽겠어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문을 열어 사과하고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누웠다. 시끄러울세라 죽은 듯 누워 숨소리도 조용하게 냈다. 부끄러운 밤이었다.


 "앞방의 명패를 보니 공대생 OOO이었어. 이름까지 알게 됐네." 간밤에 있었던 일을 W에게 말했다. 무료한 공강 시간, 교정의 벤치에 앉아 동기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걸 들은 W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날 저녁 MSN 메신저에서 '띠링' 하고 알림이 울렸다. W였다. 쉴 새 없이 메시지가 이어졌다. OOO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다고. 과는 기계항공이고, 취미는 어떠하며, 인간관계는 이렇고, 고향이 어딘지도 다 안단다. "근데 잘생겼더라. 어떻게 소개 좀 시켜줄 수 없겠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알아냈냐고 물으니 싸이월드,라는 짧은 답이 채팅창에 떴다. 일촌과 파도타기의 세계는 우리 모두를 친밀한 이웃으로 만들어준 것이었다.


 W는 수시 면접 때 "윤동주를 왜 좋아하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일순 당황해서 "잘생겨서 좋아요."라고 답했다. 그 대답 때문인지 내신 성적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불합격했다. 하지만 심기일전하여 수능 점수를 잘 받고 두 번째 면접까지 무사히 치르고 기어이 정시로 합격해서 과 동기가 되었다. 면접 때 대답이 진심이었는지 잘생긴, 본인 말로는 매력적인, 남자를 좋아했고 날이면 날마다 연애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학교 앞 맥줏집에서 참 많이도 웃고 울고 마시고 이야기했더랬다. 그랬던 친구가 지금은 어엿한 대학교수가 돼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게 어째 이상하다. 걔네들은 교수님의 학창 시절, 그 은밀했던 과거를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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