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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Oct 08. 2024

'싫어싫어병'과 강한 남자

모든 아이가 한 번은 겪는다는 그 병에 걸리고야 말았다

 "싫어! 안 할래! 싫다고! 하기 싫어!"


 밥 먹자고 할 때. 양치하자고 할 때. 옷을 입자고 할 때. 어린이집에 등원하자고 할 때. 목욕하자고 할 때. 목욕이 끝나고 로션을 바르자고 할 때. 놀이터에서 그만 놀자고 할 때. 어느 날부터인가 돌아오는 대답은 "싫어." 혹은 "아니야."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미운 다섯 살인 건가. 두 돌 때 즈음의 싫어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함도 느껴졌다. 그때의 싫어는 그냥 커피였다면 지금의 싫어는 T.O.P라고 이르면 될까. 다섯 살의 싫어는 단순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왜 내가 싫어하는지에 대해 (다소 빈약한 논리지만) 조목조목 이유를 대고, 목소리에서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단호함이 서려 있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엄마 아빠가 해 주는 모든 것에 대해 방실거리던 아이는 어디로 갔나. 50개월 나이를 먹은 너는 대체 좋아하는 게 뭐냐 그럼. 싫어 공격에 지칠대로 지쳐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혀를 내밀어 메롱하면서 "나도 몰라."라고 답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이런저런 육아서를 통해 알아본 바, 특별히 문제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아이의 자아가 발달하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진 것일 뿐이라고. 아이는 영아기를 지난 후 부모와 자신을 분리시키는 독립을 시도한단다. 그래서 싫어를 수시로 외치는 소위 '싫어싫어병'에 걸리는데, 이 시기 금방 지나간다는 육아 선배들의 격려(?)를 들었다. 몇몇은 아이가 군대를 갈 나이가 됐는데도 그 병이 낫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싫어' 한 번에 '참을 인 자' 한 번을 마음속에 그려가며 이제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첫 번째, 미리 알려주기다. 잠자리에 들기 전 양치질을 할 시간이었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면서 말한다. "진아, 저기 시계 봐. 긴 바늘이 9까지 오면 치카하러 가는 거야. 알았지?"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한다. "싫어." 역시나 싫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잇는다. "11에 갈래." 요 녀석 봐라. 벌써부터 아빠하고 딜을 하려고 한다. "안 돼, 그땐 너무 늦어." "히잉, 싫은데." "그럼 이렇게 하자. 9하고 11의 중간인 10에 가는 거야, 알았지? 더 이상 못 미뤄줘." "응, 알았어." 매일 밤마다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래도 미리 알려준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한 걸까. 아이는 시곗바늘이 10을 가리키자 군말 없이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뛰는 아이 위에 나는 아빠가 있지. 실은 나는 해야 할 때보다 5분 앞선 시각을 말한다. 그러면 아이가 5분을 미루고 원래 해야 할 시간에 양치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어른의 요령이다.


 두 번째, 선택권을 주기다. 예전에는 식사 메뉴는 무조건 엄마가 결정하는 것이었다. 싫어싫어병에 걸리기 전의 아이는 주는 대로 맛있게 먹었다. 제 입맛에 맞지 않는 반찬은 남기거나 했을 뿐. 하지만 오늘날엔 제가 싫어하는 게 나오면 인상을 팍 쓰며 외친다. "나 콩나물 싫어!" 아이의 싫어가 늘어날 때마다 아내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곁에서 지켜보니 일촉즉발의 순간이다. 이러다가 조만간에 사달이 나겠다. "그럼 우리 저녁밥에 무슨 국을 먹을까?" 서둘러 아이에게 물었다. "요즘엔 소고기뭇국이 좋아." "아, 그래? 이제 미역국은 지겨운가 보네. 소고기뭇국 먹자 그럼." 아이는 제가 선택한 국에 밥을 훌훌 말고, 제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반찬을 집어 먹었다. 이제는 주는 대로 먹기만 하는 아이가 아니다. 비단 밥먹기뿐만은 아니다. 보고 싶은 책, 하고 싶은 놀이, 입고 싶은 옷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게 늘어난 아이는 즐거워한다.


 세 번째, 이유를 물어보기다. 하루는 거실 창을 열어두고 있었다. 밤이 늦어 창을 닫자고 하자 아이가 또다시 싫어를 외쳤다. 평소와는 다른 다급한 싫어였다. "아니, 이제 자야 할 때야. 문을 닫아야지." "싫어, 싫어, 안 돼, 싫어." 왜 그러나 싶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눈빛이 자꾸만 창 밖으로 향한다. 평소와는 달리 뭔가 이유가 있어 보인다. "밖에 누가 있길래 그래?" "응, ㅎ이가 지나갈 것 같아." 아이는 요새 푹 빠져있는 친구 ㅎ이 밖에서 자기를 부를까 봐 창문을 닫으면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 집은 2층이라 밖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느 날 ㅎ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둘이서 서로의 이름을 외치고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도 되는 줄. 그날부터 거실 창을 계속 열어두자고 고집 피우는 아이였다. 이유를 알았으니 해결책을 찾았다. "진아, 지금은 밤이 엄청 늦어서 ㅎ은 집에 있어. 여기 안 지나가. 그러니까 문 닫자." 아이는 그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번째, 아이가 싫어하더라도 단호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위험한 짓을 할 때다.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형아들을 따라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던 아이. "진아, 거기는 아직 올라가면 안 돼." "싫어! 할 거야." "안 돼. 절대 안 돼. 여기로 내려와." 아이는 "아빠 싫어!"라며 툴툴거렸다. 엄마는 백만만큼 좋은데 아빠는 일, 아니, 영이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는 아이가 아무리 싫어하더라도 원하는 대로 둘 순 없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것과 약을 먹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싫다고 발버둥 쳐도 아플 때는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한다. 분리와 독립과 자기 주도성이 생겼다 한들, 안전과 건강은 아직까지는 다섯 살 아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모의 지도가 필요하다.

 

 "싫어."라는 말을 가장 자주 듣는 때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직전의 순간이다. 어떻게든 집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싫어'와 '아니야'와 '조금만 더'와 '한 번만' 등, 제가 아는 거부와 유예의 단어들을 끊임없이 내뱉으면서. 우리 아이만 그러는 건 아니다. 회사 동기 B 형의 아이그랬다.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이가 집에 가기 싫다며 순간 핸들을 확 꺾는 바람에 큰일 날 뻔했다고. 아이의 어린이집 반 친구 J도 그랬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더 타겠다며 거의 30여분을 울고불고 악을 썼다. 오은영을 위시한 모든 육아 전문가들이 들러붙어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 금쪽이 중의 금쪽이 같은 모습이었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환장하겠는데 J의 엄마는 어떻게 버텨내는지. 그동안 내가 익힌 싫어싫어병의 대응책 따위는 무력하게 느껴졌다. 우리 아이의 병은 쟤들에 비하면 경증 중에서도 경증이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뿐.


 지난 금요일. 낮까지만 하더라도 잘 놀던 아이가 밤이 되자 시들시들다. 자꾸만 바닥에 드러눕고 속이 안 좋아,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토하는 것 아닌가. 입고 있던 옷이며 침대 커버며 이불에 죄다 토사물이 묻었다. 뒤이어 배가 아프다며 설사도 했다. 야밤에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약도 먹이고 겨우 재웠다. 다음날 아침, 어젯밤과는 달리 기운찬 아이. 간밤에 죄다 쏟아내서인지 배가 고프다며 아침밥도 잘 먹었다. 이제 괜찮아진 건가, 싶었는데 이내 또 먹은 걸 토하는 것 아닌가. 결국 병원에 갔는데 별건 아니고 가벼운 장염이란다. 여름철에 그럴 수 있다고.


 그래서 주말 내내 아이는 죽을 먹었다. 제가 좋아하는 과자나 젤리는 일절 끊고, 따뜻한 물이나 매실차 같은 걸 마셨다. 역시나 싫어,를 외쳤지만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줄 순 없는 일이다. 나와 아내도 아이와 함께 죽을 먹었다. 매번 죽을 만들어 먹기는 힘드니 동네 본죽에서 배달을 시키기도 했다. 본죽에는 죽뿐 아니라 제육덮밥이니 강된장밥 같은 식사 메뉴도 있길래 시켜 봤다. 의외로 먹을 만해서 몇 차례의 끼니를 잘 때웠다. 아이는 며칠 동안 죽을 먹고 약을 몇 번 먹고 났더니 금방 원기를 회복했다. 다리를 쭉 펴고 서서 배를 슥슥 문지르더니 "이제 하나도 안 아파!"라며 헤실거렸다. 월요일에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말짱한 모습으로 어린이집에도 다녀왔다.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한참을 뛰어논 덕분에 튼튼해진 걸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마다 "어."를 외치면서, 제 친구들은 모두 귀가했는데도 혼자서 밤늦도록 놀았더랬다. 놀이터계의 알파와 오메가를 담당했던 것. 아이는 작년에 어린이집에 처음 발을 디뎠던 때와 달리 이제는 자주 아프지 않고, 아프더라도 금방 털어내고 일어선다. 최근에 어린이집 아이들 사이에서 기침감기가 돈다길래 걱정했는데 우리 아이는 한 번도 결석 않고 이번 주 내내 무사히 등하원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며칠씩 결석하고 그랬다는데.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골골대던 아이가 아니다. '강.한.남.자'가 되었다. 싫어싫어병이 이렇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사진 찍을 때 얌전히 있어주길 바라는 건 사치다
쉼 없이 팔딱팔딱거리는 게 남자아이 맞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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