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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04. 2020

선생님께서 내 후배로 들어왔다

덕수궁 돌담길, 수문군들 옆을 바삐 지나가는 할머니들
"야야, 오늘 수당 얼마 나온대?" 라는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 듯
그래도 일할 땐 제대로 각 잡고 해야지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Kodak Colorplus200

2017년 10월




 종종 덕수궁 대한문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구경한다. 이제는 하도 자주 봐서 음만큼의 감흥이 없다. 신에 예전보다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 교대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 늘의 수문장께서는 키가 크고 근엄하게 생구나, 저기 저 친구는 동작이 어설픈 걸 보니 일한 지 얼마 안 됐나 보다, 어라, 저 양반은 되게 예전부터 봤던 익숙한 얼굴인데 아직도 여기 있네, 등의 감상 떠오른다. 몇 번 마주하지 않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보인다. 감상에서 더 나아간 생각에도 잠긴다. 수문군은 하루 일당이 얼마나 될까, 단기 알바가 아니라 정규직으로 일할 수도 있까, 그렇다면 이게 평생직장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 제 코가 석 자면서  먹고사는 일에 뭐가 이리 관심이 지 원.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지난 가을에 사표를 던지고 나갔던 후배 떠올랐다. 평생은커녕 정년까지 한참 남았음에도 일찌감치 퇴직해버린 그 후배. 실은 후배라기엔 퍽 어색다. 분은 내가 고등학생 때 생물 과목 선생님이셨다. 그러니까 고3 때의 생물쌤께서, 내가 입사한 지 3년째였던 이 사에 경력직으로 사하신 . 사님 내 후배 된다는 건 상상해본 적 없던 일이었다. 인사팀에서 내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지나가던 선배가 말했다. 이번에 경력직으로 뽑힌 사람들 중에 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였던 분이 혹시 네가 아는 분 아냐, 거기서 학교 나왔잖아, 고. 에이 설마요, 진주가 무슨, 옆집 부엌 장에 수저가 몇 벌 꿰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시골 마을이 아니라구, 라고 대답했는데 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 한 잔 받으시죠. 여기서는 제가 선배가 됐으니 오늘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후배님."


 신규 채용자 명단에서 성함을 확인하고 깜짝 놀 곧바로 선생님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갔다. 제자가 아닌 선배의 위치에 서게 된 내가 밥과 술을 사기로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당신께서도 다소 놀라신 듯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이 넘은 데다, 나는 문과반이어서 그분의 수업을 들을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기억하시는 것 같았다. 네가 여기서 일하고 있었구나. 네, 선생님. 대체 이게 어찌 된 일래요. 저 기억은 나세요? 선생님이자 후배님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희미한 기억은 어쩔 수 없더라도  건 적어도 한 번 정도는 그분의 매에 맞았이 틀림없다. 당시에 우리 학교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때공부시키는 걸로 유명했으니까. 그분의 단단한 회초리와 나의 무른 엉덩이가 분명히 두어 번은 강렬하게 조우한 적이 있었을 거란 합의에 이르렀다. 피차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니까 매 맞은, 매를 때린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한참 동안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학교 다녔을 때의 사건 사고들, 그때 계셨던 선생님들, 말썽쟁이어서 유명했던 친구들과 이후의 근황 따위들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그날의 식사 겸 술자리의 이 다가왔을 즈음, 속으로만 계속해서 궁금던 질문을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꺼냈다.


 "쌤, 대체 교사 일을 그만두신 겁니까?"


 "10년 넘게 하니까 그것도 참 지겹더라고. 너 다닐 때는 초짜 교사였는데."


 "아니, 그렇다고 갑자기 회사원으로 사는 게 안 불편하시겠어요?"


 "별 걱정을 다 하네, 선배님. 선생질 하기 전에 출판사 다니던 회사원이었다. 여기가 세 번째 직장이야."


 어쩐지 하나도 긴장한 태가 나지 않더니만. 그렇게 사제지간에서 직장 선후배로, 묘한 쾌감이 느껴지는 전복된 관계로 몇 년을 지냈다. 은사님이자 후배님께서는 여느 신입사원처럼 열정적으로 일다. 나는 경력직이니까, 나이가 제법 많으니까, 회생활 경험이 으니까, 따위의 핑계를 대면서 설렁설렁 뒷짐 지고 지내지는 않다. 열정이 아직 펄 끓는 분이. 하지만 워낙에 지루한 걸 못 참는 분었는회사에서도 좌충우돌하더니 결국 몇 년 지나지 않아 세 번째 사직서를 고야 말았다. 마침 회사에서도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특별금을 얹은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던 참이었으니 때가 맞기도 했. 이미 두 차례의 퇴사 경력이 있던 그분 지리한 공기업이라는 곳이 아무래도 체질에 맞지 않던 모양이었다.


 선생님이자 후배님과 같은 회사를 다니 종종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꼰대 부장들 욕을 함께 하던 시간이 밌었는데 아쉬웠다. 쌤하고 같이 이런 얘길 하니까 진짜 신기하네요, 이런 추임새를 넣으면서. 차피 직장 생활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긴데 금만 더 참아 보시지 왜 그러셨어요. 나도 모르게 제법 선배 같은 말 하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쌤. 눈물 젖은 환송회를 치르고 작별 인사를 한 마지막날,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 연락을 받았다. 일이 있어서 회사 근처에 왔는데 랜만에 같이 점심이나 자는 문자였다. 다시 뵌 선생님의 얼굴은 딱히 변한 게 없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선생님?"

 엄청 바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장인보다 백수가 더 바쁘게 산다더니 그 말이 실이더라. 직장 다닐 때보다 알람 시각을 더 빨리 맞춰놓고 일어단다. 45세 이상 구직자한테는 국가에서 수백만 원짜리 교육 바우처를 지급해주는데, 덕분에 이런저런 교육도 받고 자격증도 몇 개 땄다고. 벽에 도배하는 도장 기술이며 타일 붙이기, 페인트칠 자격증에다, 목조 주택 조립에다, 조경에서 가로수 관리하는 소위 '나무 의사' 관련 과정까지 밟는 중이. 이 나서 늘어놓야기를 들어보니 이건 아무래도 평범한 백수의 삶이 아니다. 역시나 지루한 건 도무지 참지 못하는 분이.


 "회사 그만두니까 뭐가 이렇게나 하고싶은 일이 많은지 몰라."


 "그런데 , 교육계는 이제 아예 관심 없으세요? 말씀만 들어보면 교육은 전혀 상관없는 무슨 건축사무소라도 차릴 기세이신데."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서 이것저것 배우다 보니 그동안 하던 거하고는 전혀 다른 분야에 대한 흥미가 생더라고."


 전공이던 생물과 관련 있는 건 '가로수 관리', 딱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새로운 세계에 흠뻑 빠져든 모습이었다. 생님은 한참을 배움의 기쁨에 대해 설파하인자 표정으로 당부 말씀 덧붙다.


 "너도 회사에서 일만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이런저런 새로운 것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이것저것 많이 배워. 평생 회사 열심히 다녀봤자 나중에 아무도 너 안 챙겨준다. 백날천날 일하고, 야근하고, 회식하고, 승진하고, 그렇게 아웅다웅해봤자 퇴직하면 남는 거 하나도 없. 물론 지금 회사를 때려치라는 건 아니고. 잘 다니면서 준비를 해 두라고."

 

 요컨대, 회사를 열심히 다니되 회사 일만 하면서 살면 안 된다는 말씀. SNS에서 접하는 흔해빠진 여느 퇴사담과는 결이 다른 조언. 근래 유행하는 '용감한 퇴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밥벌이가 아닌 진짜 꿈을 찾아서, 회사에서는 펼치기 힘든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답답한 꼰대들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서, 혹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박차고 떠난 외국 여행, 따위의 서점의 자기계발서 코너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짧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자 후배님(퇴사하셨으니 이제 후배는 아구나)은 바쁘다면서 주섬주섬 외투를 챙. 뭐가 그리 바쁘세요. 근처 일산 킨텍스에서 건축박람회가 있어서 지금 가 봐야 돼. 아아, 그래서 오신 거였군요, 어쩐지. 서울 강남에서 여기까지 오실 일이 뭐가 있나 했죠. 래, 이만 나가볼게, 잘 지내라. 네, 선생님도요. 선생님은 내가 굳이 걱정할 필요없다는 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음 행선지로 떠나갔다.

 회사로 터벅터벅 돌아오는데 왠지 발걸음이 무거웠. 퇴직 후엔 뭐하고 살아야 되나, 하는 없는 고민에 빠다. 인생백세 시대는데, 그럼 정년까지 다니고 퇴직해도 40이 남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아니, 실은 아주 길고 긴 시간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건 사막의 신기루 같은 념이 된 시대이니 나도 선생님처럼 제2의 인생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 텐데. 런데 직 이후는 고사하고 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저나 아직도 그 분께 생을 배우고 있으니 과연 선생님은 선생님이시다. 아직까지 가르침을 주시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잘 안 들었던 학생으로서, 선생님이 그렇게 당부하신 게 덧없게도, 회삿일 외엔 무언가를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날 반기는 소파가 어찌나 푹신, 과자 한 봉지 뜯고 누워서 보는 TV는 얼마나 재미난, 주말의 따사로운 햇살에 파묻혀 자는 늦잠은 이리도 달콤한지. 렇게 뒹굴거리고 있으니 써 좋은 말씀을 해 주신 은사님께 부끄러울 따름이다.


 직장 동료들  은퇴와 노후 준비, 그리고 인생 2막 주제로 대화를 누곤 한다. 어떤 부장은 부동산에 열심이더니 지금 당장 퇴직해도 될 만큼 돈을 많이 벌었고, 다른 어떤 부장은 요즘에 제빵 학원을 다니고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다 그러고,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센터장은 남는 시간에 유튜브를 보면서 요즘 어떤 업종이 블루오션인지 공부 중이라고 한다. 정년 연장에 대한 이야기도 슬슬 흘러나온다. 나만 빼고 저마다 다들 계획이 있. 한참 대화가 이어지다가 수건돌리기처럼 에게도 질문돌아오면, 여태 아무것도 해 둔 게 없는지라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다.


 "방법이 없네요, 일찍 죽어야죠 뭐. 한 80세까지는 정년까지 벌어 둔 걸로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제자가 이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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